[2023년 신년특집④-탈세계화시대 한돈] 한돈 지키는 것이 식량안보 지키는 일
[2023년 신년특집④-탈세계화시대 한돈] 한돈 지키는 것이 식량안보 지키는 일
농축산업 희생 강요하던 자유무역 쇠퇴 중
완전 개방 돈육 시장, 외부 변수가 좌지우지
코로나‧러-우크라 전쟁 각국 무역 규제 증가
돈육 최대 수출국 美‧EU가 보호 무역 주도
수출 의존도 높은 韓 14년만 무역 적자 기록
세계 문 걸어 잠그는데 韓 돈육 시장 더 열어
새 시대 흐름에 역행, 한돈 생산기반도 위협
  • by 임정은

95년 세계무역기구(WTO) 출범 이후 세계 경제는 관세 인하, 비관세 장벽의 철폐를 통해 국가 간 교역과 투자가 급성장해왔다. 그런데 최근 탈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다. 전 세계적 펜데믹은 강도 높은 방역과 이동의 제약 속에 공급망을 차단했다. 이후 세계의 연결이 차츰 회복되는 듯 했지만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공급망은 더 훼손되고 혼란도 가중됐다. 여기다 미-중 패권 경쟁이 심화되면서 하나의 세계는 다시 쪼개지고 장벽을 높이기 시작했다. 미국과 EU(유럽연합)는 최근 보호무역 시대로의 진입을 본격화하는 조치들을 단행했다. 인플레이션과 탄소 중립이라는 명분을 앞세웠지만 이로 인해 세계 통상환경이 보호무역주의로 급변하는 계기가 됐다.

■한돈 위기의 한 축 시장 개방=한돈산업에 있어서 자유무역과 세계화는 중요한 화두일 수밖에 없다. 돼지고기 시장 개방과 밀접하게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수출이 국가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큰 우리나라는 농축산물 시장을 내어주는 조건으로 다른 나라들과 교역의 문을 넓혀왔다. 97년 돼지고기 수입이 자유화되고 04년에는 첫 FTA 상대인 칠레와의 FTA가 발효됐다. 이후 11년 EU, 12년 미국, 15년 캐나다까지 세계적인 돼지고기 생산‧수출국들과 ‘자유무역’을 위해 국내 돼지고기 시장을 개방했다.

그런데 농축산물 시장을 내어주고 밀어붙였던 FTA는 본래의 목적을 충분히 달성했을까? 21년 미국과의 FTA 발효 10년을 맞아 산업통상자원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1년 대 미국 수출액은 959억달러로 12년(585억달러) 대비 63.9% 증가했다. 그런데 동시에 수입액은 12년 433억달러에서 21년 732억달러로 69% 늘었다.

그렇다면 FTA 이후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량은 어떻게 변했을까? 농촌경제연구원에 따르면 FTA 이행 6~10년차 미국산 돼지고기 평균 수입량은 18만8천톤으로 FTA 발효 전 평균 대비 73.6%가 증가했다. 돼지고기를 포함한 대 미국 농축산물 무역수지 적자는 21년 90억5천만달러로 FTA 발효 전 평균 55억4천만달러와 비교하면 63% 급증했다.

한-미 FTA로 한국 경제에 실익이 있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미국이 FTA로 한국 농축산물 시장을 확실히 접수했다는 사실만은 분명해 보인다. 한-EU FTA의 성적표는 더 초라하다. 대 EU 수출액은 09~10년 연평균 501억 달러에서 17~19년 연평균 548억 달러로 9.4% 증가하는데 그쳤다. 그런데 수입은 64.7%(09~10년 355억 달러→17~19년 584억 달러) 늘어 미국보다 불균형이 더 심했다. 그리고 한-EU FTA 이행 10년차 EU산 돼지고기 수입량은 발효 전 평년 대비 33.6% 증가했다.

이 같은 연이은 시장 개방으로 21년 기준 수입 돼지고기 가운데 FTA 체결국 비중이 97%에 달했으며 또 수입육 가운데 90%가 관세 없이 들어왔다. 시장 개방으로 100%에 달하던 돼지고기 자급률은 70%도 위태롭다. 더 큰 문제는 이 같은 시장 개방으로 국내 돼지고기 시장에서 수입육의 영향력이 그만큼 커졌다는 점이다.

중국의 ASF 이후 세계 돼지고기 교역물량은 요동쳤다. 그리고 그에 따라 국내 돼지고기 수입량도 급변했다. 18~19년 42만~46만톤에 달하던 돼지고기 수입량은 20~21년은 30만톤 초반대로 그리고 지난해 다시 40만톤을 훌쩍 넘겼다. 전적으로 중국 변수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지만 적어도 문턱이 낮아진 국내 돼지고기 시장은 수출국들에게는 좋은 대체 시장 역할을 했다. 외부 변수에 따라 급변할 수 있는 돼지고기 수입량은 그 자체로 국내 돼지고기 시장의 안정성을 저해하는 치명적인 위험요소일 수밖에 없다.

■보호 무역의 부활=WTO 보고서에 따르면 21년 10월부터 1년간 코로나 19 방역을 위해 세계 각국이 도입했던 무역 규제의 79.2%가 방역 지침 완화 흐름 속에 폐지됐다. 그러나 지난해 2월 우크라이나 침공 이후 각국이 식량안보 등을 이유로 전략적 무역 정책을 펴면서 수입 수출 제한 조치가 다시 늘었다. 주로 곡물을 비롯한 식품과 사료, 비료의 교역을 제한하는 조치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는 지적이다.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도입된 이 같은 무역 제한 조치 78개 가운데 57개는 계속 시행되고 있다.

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에 따르면 지난해 상반기 기준 한국에 대한 수입규제(반덤핑·상계관세·세이프가드) 조치는 총 27개국에서 208건이 시행 중인 것으로 파악됐다. 11년 말 기준 117건에 불과했던 한국에 대한 수입 규제가 10여년 사이 2배 가까이 증가한 것이다.

한국 경제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을 감안하면 이처럼 늘고 있는 수입 규제조치는 한국 경제의 부담을 더욱 가중시킬 수밖에 없다. 그리고 지난해 국내 무역적자는 지난달 20일 기준 490억 달러로 무역적자가 역대 최대 규모였던 96년(206억달러)보다 두 배 이상 많다. 또한 연간 무역적자를 기록한 것은 08년 이후 14년만이기도 하다.

한국 수출을 주도하는 반도체, 화학공업 제품 등이 글로벌 경기 침체로 부진했던 게 무역적자의 가장 큰 이유지만 최근의 보호무역 확대와도 무관치 않다. 그런데 한국 수출은 앞으로가 더 가시밭길일 수 있다. 지난해 8월 발효된 미국의 IRA(인플레이션감축법)는 미국, 캐나다, 멕시코 등 북미에서 생산된 전기차에만 최대 7천500만달러의 보조금을 세액 공제 형태로 지급한다. 당장 미국에 진출한 한국차 회사들이 판매 순위에서 밀려나고 있다는 소식도 들려온다. 올해는 타격이 더 클 것이라는 분석이다.

이뿐만이 아니다. 유럽연합은 지난해 탄소배출량이 많은 수입품에 세금을 물리는 탄소국경조정제도 도입에 합의했다. 유럽판 IRA가 될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 우리나라는 대 유럽 철강 수출국 중 5위 규모로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로 타격을 입을 나라 중 하나로 한국을 꼽았다.

세계가 다시 보호무역시대로 되돌아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외무역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는 치명적일 수 있다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미국, 유럽은 물론 중국도 미중 갈등을 계기로 자국 내 생산 비중을 늘리면서 자립화를 강화하고 있다. 미중 패권 경쟁 속에 세계 경제의 블록화는 더 진행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이에 한국은 높아져 가는 무역 장벽을 뛰어넘기 위해 기술경쟁력 제고 등을 요구받고 있는 중이다.

■거꾸로 가는 돈육 수입=관세를 인하하고 비관세 장벽을 철폐하며 한돈을 포함해 국내 농축산업의 희생을 강요하던 세계화와 자유무역의 가치가 도전받고 있다. 그런데 이처럼 보호무역주의가 대세가 되면서 각국이 무역장벽을 높이고 있는 지금, 우리나라 돼지고기 시장은 되레 문턱을 더 낮추고 있다.

이미 수입 돼지고기 대부분 무관세로 들어오고 있는 가운데 지난해 정부는 물가 안정을 이유로 돼지고기에 할당관세를 시행한데 이어 올해도 돼지고기에 대한 할당관세 조치를 연장키로 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지난해 9월 유럽 돼지고기에 대해 ASF 지역화를 인정, ASF가 발생하고 있는 독일, 폴란드 등으로부터 돼지고기 수입도 가능해졌다. EU는 최근 체코에서 ASF가 재발했다. 독일, 폴란드 등에서도 ASF가 끊이지 않고 있어 언제든 다른 EU 내 주요 수출국에서도 ASF가 발생할 수 있다. 그런 경우 다른 나라로는 수출길이 막히지만 한국시장은 예외가 된다. 그리고 이는 다른 나라로 갈 돼지고기까지 한국으로 향할 수 있다는 얘기로 결국 돼지고기 시장 추가 개방의 효과가 우려되고 있다.

우리가 돼지고기 등 농축산물 시장을 개방해서 얻고자 했던 세계 시장은 문을 닫아걸고 있다. 특히 우리 수입 돼지고기 시장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미국, 유럽이 그 선봉에 서서 한국 수출을 위협하고 있다. 그럼에도 계속해서 우리나라 돼지고기 시장만은 열수 있는 만큼 더 열겠다는 조치가 과연 타당한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물론 현실적으로 당장 돼지고기 수입을 중단할 수는 없다. 그러나 분명 추가적인 시장 개방은 탈세계화와 보호무역주의로 흐르는 세계적 흐름과는 역행하고 있다. 더욱이 세계화와 자유무역이 도전받고 보호무역으로 치닫고 있는 세계적 흐름 속에 식량 안보는 무엇보다 중요한 가치로 대두되고 있다. 때문에 단순히 대세를 벗어났다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각종 규제로 양돈업 생산 기반은 갈수록 위축되고 있는 지금, 추가적인 시장 개방은 자칫 국내 양돈업 생산 기반을 더욱 벼랑 끝으로 몰아갈 수 있어 더 문제인 것이다. 새로운 시대, 한돈산업을 지속 시키는 일은 결국 우리나라 식량안보도 지킬 수 있는 길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길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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