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서울의 이태원 핼러윈 참사(慘死)를 보면서 나라가, 국가의 지도부가 뭔지 되돌아봤다. 국민의 안녕과 안전을 지키는 사회 집단이 국가 아닌가? 전쟁이 나거나 천재지변이 발생했을 때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해주는 집단이 국가 아닌가? 만약 그런 일을 당하고 호소할 곳이 없다면 나라 없는 백성이 아닌가? 그래서 사람들은 국가라는 사회 집단에 세금을 납부, 선출직이든 비선출직이든 국가의 지도부에게 지켜달라고 요구하고 부탁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개개인의 생명과 안전은 개인 스스로 지켜야 하고 보호해야 하는 게 우선이고 원칙이다. 하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상황이나 여건에서는 국가가 공적인 질서를 통해 국민이 안전토록 유지하는 것이 국가의 의무이고 존재 이유 아닌가? 특히 사고의 위험이 일어날 우려가 있는 곳(상황)에 법을 제정 시행하면서 미리 통제하고 규제하는 집단이 국가 아닌가? 더욱이 오늘날은 첨단 과학기술과 기법으로 미래를 예측, 사고를 예방할 수 있지 않은가? 그런데도 전근대적인 참사가 수도(首都) 한복판에서 발생해 국가의 기능과 역할을 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국가는 국가가 아무리 잘했더라도 사고나 사건, 재난을 합리화하거나 변명해서는 안 된다. 먼저 잘못을 인정해야 한다. 네 탓이 아닌 정부 탓이라고 해야 한다. 그런 다음 대안이나 후속 조치를 모색해야 한다. 선진국이 그렇게 하고 있다. 변명하면 할수록 설득과 공감은커녕 국민의 태산 같은 분노와 공분(公憤)만 일으킬 뿐이다. 문제의 본질을 덮어두고 희생양을 찾으려 한다면 더욱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반복할(될) 여지가 높다는 것을 수없이 봐왔다.
국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가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구성원, 즉 공직자들의 자세다. 어떠한 관점에서 사안을 보느냐에 따라 방안이 다르기 때문이다. ‘네 탓’으로 한다면 해결책은 없지만 ‘내 탓’이라 하면 방안이 나온다. 논어(위령공편)에도 있다. “군자구저기(君子求諸己) 소인구저인(小人求諸人) ; 군자는 일의 성패를 자신 속에서 찾고,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
양돈에서도 국가라는 집단을 생각하게 될 기회가 많았다. 양돈에도 참사가 있어서다. 구제역 ASF로 수백만마리의 돼지가 살처분 당했고 그로써 농가들 피해도 적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정부는 정부의 방역상 문제점을 거론하지 않은 채 농가에 전가(轉嫁)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오죽했으면 한돈협회장이 국정감사 참고인으로 출석, 질병 발생을 농가에 돌리는 것에 대해 “억울하다”고 호소하기도 했다. 농가에 전가한다 해서 질병이 준 게 아닌데도 말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보호하는 첫 보루다. 국가가 이유를 대면 안 된다. 분열과 갈등만 조장할 뿐이다. 반성하고 통찰(痛察)해야 한다. 그래야 정확한 발병 원인과 분석, 그리고 예방책이 나온다. 이럴 때 백성에 의한 국가의 신뢰는 높아지고 국격 역시 높아져 국가의 경쟁력도 덩달아 높아진다. 그런 나라가 살기 좋은 나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