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축산물 수입 완화 정책의 복선(伏線)
[칼럼] 축산물 수입 완화 정책의 복선(伏線)
독 폴 돈육 수입 ‘지역화’ 예고
CPTPP 가입 위한 사전 준비?
  • by 김오환

소설이나 희곡에서 많이 사용하는 용어 가운데 복선(伏線)이란 말이 있다. 나중에 있을 사건에 대하여 미리 넌지시 비쳐두는 기법이다. 예를 들면 황순원 선생의 ‘소나기’ 작품에서 남자 주인공이 윤 초시 증손녀랑 소나기를 피하기 위해 움막에 들어가는데 소녀의 꽃이 으깨지는 것이 소녀의 죽음을 암시해 주는 것이 복선이다.

일반적으로 복선은 긍정적 측면보다 부정적 관점에서 많이 드러난다. 강력한 반대와 반발이 예상되는 경우, 그것을 시행하기 이전에 그보다 다소 약한 부분을 건드리면서 속마음을 감출 수 있기 때문이다. 방법론적 차이는 있지만, 갑자기 친절을 베풀면서 난제(難題)를 해결하려는 의도 또한 복선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정부의 돼지고기 등 축산물 수입 정책에서 수입을 보다 자유롭게 하려는, 규제를 줄이려는 정책의 ‘복선’이 엿보이고 있다. 현재는 미국이나 유럽 등 축산물 수출국에서 구제역이나 ASF가 발생하면 수출이 금지된다. 우리로서는 대의명분(大義名分)이 확실한 수입 금지 정책이다. 그런데 이것을 완화할 조짐이다.

정부는 구제역 발생으로 수입이 중단된 브라질산 돈육을 산타카타리나의 지역에서 생산된 돈육에 한해 수입을 허용하더니 이제는 ASF로 수출이 중단된 독일과 폴란드 돈육 마저 ‘지역화’를 통해 수입을 허용할 방침이다.(9월7일 행정예고) 이로써 헝가리 슬로바키아도 수출이 가능하게 됐다. 비발생지역에서 생산된 돼지고기는 수입을 용인하겠다 한다.

정부는 왜 독일과 폴란드에게 인심이 좋을까? 우리나라와 국가 차원에서 무슨 깊은 내막이 있는지 모르겠으나 필자의 판단으로는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 가입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만약 한국이 CPTPP 회원국으로 가입하면 동식물 위생·검역(SPS)장벽을 완화해야 한다.

CPTPP 가입하면 질병 발생으로 축산물 수입을 막던 기준을 ‘지역’에서 질병이 발생했던 ‘구역’으로 좁혀야 한다. ‘구역’은 ‘지역’보다 낮은 개념이고 하위 용어다. 지역은 행정적 의미가 풍기나 구역은 동네 한쪽, 구석 등 행정적 의미와는 거리가 멀다.

양돈을 비롯한 경종 농업까지 전국 농민들은 정부의 CPTPP 가입을 결사 반대하고 있다. 그런 상황에서 정부가 獨 폴란드의 ‘지역’화를 통해 돼지고기 수입을 완화하는 조치는 CPTPP 가입을 위한 ‘복선’으로 느껴지고 있다. ‘지역’으로 한정된 수입 금지 조치를 ‘구역’으로 한정해도 별 차이 없음을 강조하려는 정부의 복선이 아닐까 하는 ‘복심(腹心)’을 떨쳐버릴 수 없다. 농가의 반발과 반대를 체념시키기 위해서 말이다. CPTPP 가입은 유럽연합, 미국 등 국가들과 FTA가 된 상황에서 관세로 수입을 막으려는 것은 무의미해지고 있다. 마치 양파가 한 겹 한 겹 벗겨짐을 당하는, 속수무책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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