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방역의 ‘사법화(司法化)’ 이젠 끝내야
[칼럼] 방역의 ‘사법화(司法化)’ 이젠 끝내야
법으로 질병 막는 정책 한계 보여
농가와 협의 합의 후 대책 수립
  • by 김오환 발행인

정치라는 것은 여야가 사안에 대해 논의하고 협의하고 합의하면서 공통분모를 찾아가는 행위다. 이런 분위기의 정치가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러지 못하고 다수의 힘이나 법으로 정치하면 민주주의는 요원하고 여야 갈등에 국민만 피로감에 젖는다. 정치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에서도 대화와 타협은 고사하고 사법화(司法化)로 치닫고 있다.

특히 대민(對民) 관련 부서의 경우 업무를 이해 당사자와 협의나 합의보다 사법화, 즉 법에 의존하는 것은 대화 부족이며 책임 전가요 책임 회피다. 나아가 직무유기다. 만사(萬事)에 법이 끼어들면 이해 당사자끼리 해결될 것도 도리어 복잡해지고 실타래처럼 얽히고설킨다. 법은 법규대로 해석, 적용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법을 피할 수 있으면 최대한 피하는 게 상책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다. 사건, 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법은 늘고 있다. 그런데도 사건 사고는 늘고 있다. 법의 엄중함은 점차 약해지고 법은 희화화된다. 사건 사고의 악순환만 반복된다.

정치건 사회건 ‘사법화’ 주체는 약자가 아니라 강자다. 강자가 약자를 다스리기 위해 법을 ‘이용’하는 것이다. 처음에는 강자가 법으로 약자를 이기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갈수록 강자의 법 이용, 사법화는 막다른 골목에 다다른다. 법은 남아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법을 이용한 정치건, 사회는 발전은커녕 더욱 황폐화하고 만다. 법을 남용(濫用)한 ‘사람’들 때문이다. 그들이 시대를 망치고 불신과 불만을 키우고 있는 것이다.

양돈으로 돌아오자. 올해(4월말 기준) ASF가 8번째 발생했다. 이에 농축산부는 1월, 2월, 4월에 각 2차례씩 총 6번이나 농장과 농가들이 준수해야 할 방역기준을 추가 공고했다. 물론 부족한 부분이나 생각지 못한 부분에서 ASF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방역기준을 추가 공고할 수 있다. 문제는 추가 공고, ‘방역의 사법화’가 너무 잦다는 점이다.

2000년 3월 구제역 발생 이래 ‘방역의 사법화’는 해마다 강화됐다. 그런데도 각종 질병 발생이 감소하기는커녕 ASF까지 ‘빠르게’ 유입되는 것을 고려하면 방역의 사법화는 실패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앞서 지적했듯이 사안에 대한 ‘사법화’는 책임 회피요 책임 전가요 직무유기다. 방역 정책도 이에 자유로울 수 없다.

농장에서 질병이 발생했을 경우 ‘이 농장이 기존 법규를 준수하지 않았다’고 지적하면, 해당 당국과 당국자는 책임을 피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질병은 근절되지 않고 계속 터지고 있다는 점이다. 당국과 당국자는 법으로 책임을 피할 수 있는지 모르겠지만, ‘깊게 들여다보면’ 당국과 당국자는 법의 책임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들이 법을 만든 주체이기 때문이다.

정치가 정치의 사법화에서 벗어나 협치를 수행하면 민주주의는 더욱 발전할 것이며 법의 권위 역시 존중받을 것이다. 그렇듯이 양돈 방역도 일방적인 법치보다는 생산자단체와 협의 합의를 통해 시행하면 질병 발생은 줄 뿐만 아니라 방역 정책 또한 빛을 크게 발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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