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돈현장] ‘우리 농장 자돈사 돼지가 이상(異常)해요!’
[양돈현장] ‘우리 농장 자돈사 돼지가 이상(異常)해요!’
  • by 신현덕
신현덕 원장 / 신베트동물병원
신현덕 원장 / 신베트동물병원

상(常)이라는 말은 ‘떳떳하다, 영원하다, 일정하다, 예사롭다, 평범하다, 변함없이 행하다, 늘, 언제나, 도리, 법도, 규율’의 의미를 갖고 있다. 그래서 정상(正常)이라 함은 특별한 변동이나 탈 없이 제대로인 것을 말한다. 그러니 이상(異常)하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태와는 다른 별나거나 색다르다는 말이 된다. 돼지를 키우는 현장에서 관리자라면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을 미리 발견할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 자동차 운전할 때 차선을 벗어나면 교통사고가 나는 것처럼, 돼지를 관리 할 때 어떤 상황이 정상 범위에서 벗어나도록 놔두면 생산성 저하나 폐사 같은 문제가 발생한다. 지금 처한 상황이 정상을 벗어날 수 있는지 여부를 빨리 알아차리는 지가 돼지 키우는 실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려면 정상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고, 어떤 변화나 이탈이 있는지 알아야 한다. 공부, 교육, 훈련의 필요성이 거기에 있다. 공부와 교육과 훈련을 게을리 하는 농장의 생산성과 수익성은 현상유지에 머물거나 뒤처질 수밖에 없다. 세상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과 사업은 실패와 파산뿐이다.

자돈사 돼지가 물과 사료를 잘 먹고 아늑한 잠자리에서 잘 자고 또 제 자리에 똥을 잘 싸는 것이 정상이다. 눈은 맑고 코는 촉촉하며 피모는 윤기가 나고 배가 빵빵하고 혈색이 좋으면서 관리자를 반기고 꼬리를 흔드는 자돈이 정상이다.

미국 파이프스톤 양돈회사 매뉴얼에 따르면 돼지 한 마리당 하루에 2초 정도만 관찰하면서 바뀐 것과 이상한 것을 발견해내면 전염병 근절과 문제를 조기에 해결할 수 있다고 한다.

아프리카돼지열병(ASF) 근절의 핵심도 조기발견과 즉시 신고와 초동대처에 달려있는 것과 같다. 사소한 문제든, 대형사고든지 간에 시작은 작은 변화와 이탈에서 발생하는 것이다.

돈을 벌어주는 돼지에게 하루에 2초 정도 애정 어린 눈빛으로 차분히 살피면서 정상과 이상을 구분해내고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는 것이 관리자 업무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ASF로 누구나 다 초긴장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저녁 무렵 한 농장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동일한 형태와 규모의 자돈사 세 동 가운데 한 동 600두 중에 40여 두가 몇 시간 사이에 이상(異常)한 증상을 보이면서 죽어 나간다는 것이다. 자돈이 한 방향으로 돌진을 하고 빙빙 돌고 자전거 타듯이 발을 구르고 머리를 들어 뒤로 재끼면서 허리를 꺾는 등 이제껏 겪어 보지 못한 신경증상과 이상행동을 한다는 것이었다. 연쇄상구균 뇌막염이나 부종병은 아닌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감염성 질병처럼 자돈들이 열을 내는 것도 아니라고 했다. 나머지 다른 두 동에서는 전혀 이상이 없다는 것이었다.

최근 업무사항을 자세히 물었더니 2일전 클로로칼키로 음수소독을 실시한 것 이외에는 특별한 변동은 없었다. 클로로칼키정제를 기존보다 1.5배 강한 용량으로 실시하였고 세 동 자돈이 같은 물을 먹는 상황이었다. 농장장이 보내온 폐사돈 부검소견으로는 폐엽, 심장, 신장, 비장이나 위장관에 이렇다 할 병변은 보이질 않았다.

다음날 새벽같이 방문하기로 하고 우선 먹이던 소독수를 폐기하고 새로 받은 물에 해독영양제를 첨가하고 반드시 정상적 음수공급이 되는지 점검하고 교정하도록 하였다. 파스튜렐라 폐렴병변이 일부 보여서 세피티오퍼제를 전두수 주사하도록 했다.

다음날 농장에 도착해 자돈사를 둘러보니 돈방과 복도 여기저기에 폐사한 자돈들이 널부러져 있었다. 50여두가 추가로 죽어서 사고율은 15%에 이르렀다. 자돈사 전체구간 폐사율이 2% 미만으로 관리되던 농장에서 겪은 대형사고였다. 음수라인을 확인하는 과정에서 대부분 돈방의 급수관 끝 니플 연결부위가 걸쭉한 콧물처럼 생긴 바이오필름 덩어리로 막혀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세 동중 문제의 그 동에서만 그런 현상이 발견되었다. 소독약에 의해 파이프내벽에 붙어있던 세균, 곰팡이, 이끼류 등이 떨어져 나가 뭉쳐지면서 물공급을 막고 있었던 것이었다.

음수공급 부족에 의한 염중독(음수박탈 사고, 나트륨이온 중독증)사고로 진단하였다. 염중독은 소금성분을 많이 먹어서 발생하는 경우보다 사료를 먹고 물을 제대로 먹지 못했을 때 발생하는 사례가 많다고 한다.

현장에서 대부분 발생사례의 경우 항생제 음수투약하고 니플이 막히거나 급수파이프를 잠갔다가 여는 것을 깜빡하는 경우, 위 농장 사례처럼 소독약에 의한 바이오필름이 음수공급을 막는 경우에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일부 관리자들은 책임추궁을 우려하여 사고가 난 후에 음수중단 사실을 숨겨서 진단에 혼선을 주기도 하였다.

음수공급 부족으로 염중독이 발생한 상황에서 긴급하게 물이 콸콸 나오도록 수압을 늘려주면 증상이 악화될 수 있기 때문에 서서히 물 공급을 늘려주어야 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진단의 정확성을 높이기 위하여 증상을 보이는 자돈 생체 2두와 사체 2두를 옵티팜 질병센터로 보내어 정밀검사를 진행했다. 전염성질병은 아닌 것으로 판정되었다.

방문당일 오후부터는 추가적인 증상이 보이지 않았다. 신경증상을 보이던 자돈들은 회복이 어려웠다. 그다음 날부터는 정상적인 자돈군 건강상태로 회복되었다.

2주도 지나지 않아 이번엔 ASF 발생지역에서 가까운 농장의 자돈사에서 이틀 사이에 40여 두가 신경증상을 보이며 죽었다는 전화가 왔다. 방역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자돈사 물탱크에 소독제(라*****정)을 고농도로 투약하고 이런 상황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앞 농장과 동일한 자돈 염중독 사고였다. ASF 방역차원에서 음수소독을 실시하는 빈도가 증가하면서 염중독 사례가 증가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돼지가 먹을 물이 제대로 공급되는지 확인하는 것은 하루에도 수시로 신경써야 하는 일이다.

니플에 자돈들이 몰려있다든지, 배가 꺼져있는지, 똥이 변비인지, 입 주위가 말랐는지 돼지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정상이 아닌 이상한 상황을 어렵지 않게 탐색해낼 수 있다.

일본군 731부대 생체실험에 따르면 사람이 물을 7일 동안 못 마시면 죽고 물만 먹으면 60~70일 후에 죽는다고 하였다. 그러나 사료를 먹은 돼지가 물을 먹지 못하면 단시간 내에 염중독에 걸린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 농장 돼지는 물을 잘 마시는지, 이상한 상황은 없는지 살펴봐야 할 때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