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6주년 특집⑥] 기후 변화, 동물 질병의 판을 바꾸다
[창간 26주년 특집⑥] 기후 변화, 동물 질병의 판을 바꾸다
온난화, 곤충 동물 서식지 이동 촉발
가축 질병 지구로 확산 가속, 초국경화
아프리카 발원 ASF‧럼피스킨 中‧韓까지

種간 바이러스 전파 빈번, 사람도 위험
기후변화 환경 파괴가 결국 인류 위협
인간-환경-동물 건강 모두 하나의 문제
원헬스 대두, 항생제 내성 경각심 커져
유럽‧美 양돈 항생제 의존도 낮추는 중
사양‧위생 개선, 예방 중심 사육이 핵심
  • by 임정은

이번 겨울 국내선 3대 가축 전염병, 즉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와 ASF, 구제역이 동시에 발생했다. 지난 19년 ASF가 국내 유입된 이후 처음있는 일이었다. 그중 고병원성 AI는 이번 겨울(25~26년) 61건 발생했는데 22~23년 32건, 24~25년 46건으로 매년 늘고 있는 추세다.

ASF는 첫해 14건서 △2020년=2건 △21년=5건 △22년=7건 △23년=10건 △24년=11건으로 매년 발생이 끊이지 않고 발생 건수도 증가해왔다. 구제역은 돼지에서는 발생하지 않았고 ASF와 달리 백신이라는 방어 수단이 있다. 하지만 최근 러시아와 중국에서 SAT-1 혈청형 구제역이 발생하며 국내 유입에 대한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지금 국내에서 접종하는 백신으로는 방어할 수 없어서다. SAT-1은 ASF처럼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던 전염병이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코앞까지 다가왔다.

■초국경 동물 질병의 위협=지난해 세계 동물보건기구(WOAH)는 처음으로 세계동물 건강 현황 보고서를 발간했다. 보고서를 보면 동물 질병은 갈수록 빠르게 새로운 지역으로 확산되면서 새로운 지역과 종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실제 우리나라도 최근 몇 년 사이 새로운 질병이 연이어 유입되고 있다. 지난 2023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서 럼피스킨병이 발생했다. 럼피스킨은 모기와 파리 등을 통해 확산되는 대표적인 곤충매개 질병이다. 럼피스킨은 1929년 아프리카 잠비아에서 최초 발생 후 아프리카지역에서 지속 발생했던 질병이다. 그런데 2013년 터키를 시작으로 동유럽과 러시아로 확산됐고 19년부터는 아시아 지역까지 유입됐다. 그리고 23년 결국 우리나라도 럼피스킨 발생국이 됐다.

ASF는 1921년 케냐에서 최초로 발견된 후 수십년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서만 존재했다. 그런데 1950년대 이후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스페인 등 유럽과 카리브해 국가 등으로 확산됐다. 다만 당시에는 1990년대 중반까지 대부분의 국가에서 박멸에 성공했다. 그러다 2007년 유럽에 재유입된 이후 러시아를 포함한 유럽 국가들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2018년 중국을 시작으로 아시아 전역으로 ASF가 확산되면서 전 세계적으로 ASF가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계기가 됐다. 백신도 치료제도 없는 ASF는 현재 전 세계 양돈산업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됐다.

그리고 최근 오랜 기간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발생이 국한됐던 SAT-1 구제역이 중국까지 확산됐다. WOAH는 최근 SAT-1 구제역의 세계적 확산을 경고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중국까지 들어온 이상 우리나라는 또 다시 ASF와 같은 재앙이 닥칠지 모르는 상황을 맞게 됐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은 최근 ASF, 구제역,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와 같이 국경을 넘어 빠르게 전파되는 초국경 동물 질병이 세계 식량 안보와 경제 안정에 가장 시급한 위협 중 하나라고 경고했다.

■기후 변화와 가축 질병=아프리카의 풍토병에 머물던 럼피스킨과 ASF가 먼 한국 땅까지 확산할 수 있었던 것은 기후변화가 공통된 배경으로 꼽힌다. 럼피스킨의 경우 겨울철 기온이 상승하면서 질병을 매개하는 곤충들이 추운 지역에서도 생존할 수 있게 됐고 이로 인해 곤충 서식지가 북상하면서 새로운 지역으로의 확산이 가능했다는 설명이다.

세계적인 ASF 확산은 교역의 증가와 같은 인간 활동이 중요한 원인이 됐다. 그리고 동시에 기후 변화도 주요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기후 변화가 온도와 습도의 변화를 통해 바이러스의 생존 기간을 늘리고 멧돼지 생태계의 변화를 유발, 서식지를 이동 확대시킴으로써 ASF 확산시켰다는 설명이다.

비단 ASF뿐만 아니다. 기후 변화와 온난화는 그 자체로 가축 건강에 치명적이다. 그리고 동시에 가축 질병을 매개하는 곤충의 증가와 서식지 변화 등으로 질병을 다른 지역으로 퍼트리기도 하고 경험해보지 못한 신종 바이러스가 출현하는 원인이 될 수 있다고 과학자들은 경고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이미 기후 변화가 일으킨 동물 질병의 대란, 그 시작을 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환경-인간-돼지 건강은 모두 하나=그런데 기후 변화가 일으키는 동물 질병의 문제는 동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사스, 메르스, 코로나 19는 모두 동물에서 유래해서 사람으로 전파된 질병이다. 과학자들은 기후 변화가 이 같은 종(種)간 바이러스 전파를 더 촉진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조지타운대 연구팀이 ‘네이처’에 지난 22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기후변화로 2070년까지 새로운 종간 바이러스 전파가 1만5천건 이상 발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지구 온난화로 동물들이 더 시원한 서식지를 찾아 이동하면서 기존에 만나지 않았던 종들이 서로 접촉하게 되고 이 과정에서 바이러스가 교차 감염된다는 설명이다. 동물뿐만 아니라 사람도 예외는 아니다.

WOAH에 2005년부터 23년까지 보고된 질병 중 47%가 인수공통감염병, 즉 동물에서 인간으로 전염될 가능성이 있는 인체 건강 위협 질병으로 간주됐다. 특히 조류 인플루엔자가 포유류에서 발생한 사례가 24년 기준 55개국에서 1천22건이 발생, 23년 대비 2배 이상 증가했다.

결국 기후 변화와 환경 파괴의 문제가 동물을 거쳐 사람에까지 치명적 질병을 옮길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싹텄고 그런 배경에서 나온 개념이 ‘원헬스’다. 인간-동물-환경의 건강을 하나의 문제로 보고 환경과 동물이 건강해야 인간도 건강할 수 있다는 인식이다.

유럽이나 미국이 일찍이 축산 현장에서 항생제 사용 저감에 나선 것도 ‘원헬스’적 시각에서 비롯됐다. 가축에서 항생제 오남용과 이로 인한 항생제 내성균은 인수공통감염병의 위험을 더욱 높이는 문제로 지목된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항생제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특히 돼지에서의 중요 항생제 내성이 높은 수준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인수공통전염병과 항생제 내성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날로 높아져 가고 있다. 때문에 항생제가 양돈산업에는 또 다른 규제 혹은 비난의 구실이 될 위험도 없지 않다.

우리보다 돼지를 질병 없이 더 잘 길러내는 선진국들에서는 그동안 항생제 저감 계획을 세워 상당한 정도의 성과를 거뒀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EU의 경우 지난 2018년을 기준으로 오는 2030년까지 축산 및 양식 부문의 항생제 판매량 50% 감축을 목표로 설정했다. 그리고 지난 24년까지 24.3%를 줄였다. 미국 역시 2024년 전체 판매량이 2015년 최고 판매량보다 27% 감소했다.

‘원헬스’의 시각에서 돼지 질병에 대한 해법을 찾는다면 돼지의 면역력을 높이고 환경을 개선하고 외부로부터 침범해 들어오는 바이러스를 막아 건강한 사육환경을 제공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가 된다. 항생제가 아닌 건강한 환경을 통해 돼지의 질병을 미리 예방하는데 초점을 맞추는 것이다. 항생제 사용을 지금 당장 중단하거나 극단적으로 줄이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다른 나라들과 비교할 때 더 많은 항생제를 필요로 하는 양돈 현장에 대한 고민은 반드시 필요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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