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시골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농촌문화가 몸에 배어 있다. 지금도 계절마다 벌어지는 농촌문화가 눈에 선하다. 설날을 시작하여 정월 대보름, 5월 단오, 7월 백중, 추석, 동지에 이르기까지 1년 농촌 문화가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온갖 정(情)과 기쁨(樂), 한(恨)이 담겨 있는 축제였다. 그래서 그런지 그것은 엄마 치마 속에 감긴 것처럼 포근했고 편안했다.
김장도 하나의 문화였다. 없이 살던 시절에 추운 겨울을 가족과 함께 무사히 넘겨야 했던 김장은 말 그대로 장(藏)이었고 모두의 생존과 생활을 위한 축제의 장(場)이었다. 이웃과 품앗이하면서 가을을 보내고 겨울을 맞이하는 김장은 마을 잔치였다. 올해를 마무리하고 내년을 연결해주는 징검다리 같았던 김장은 새해 농사까지 쉬게 하는 꿀단지였다.
꿀이 쉽게 만들어지지 않듯이 김장 과정도 복잡하고 어렵다. 우선 배추를 뽑아서 씻고, 둘로 갈라, 소금에 절인 다음, 양념을 듬뿍 묻혀, 장독에 담가, 뒤뜰에 묻기까지 엄마의 손을 수백번 거쳐야 한다. 그만큼 엄마의 정성이 그득 담겨야 하고 온 가족이 힘을 합해 새 생명을 탄생시켜야 한다. 그렇치 않으면 수입한 김치처럼 흉내만 낼뿐 무르고 쉰 네가 난다. 그래서 김장을 문화(文化)라 불러도 조금도 어색하지 않다.
그런 김장 문화가 다른 문화처럼 갈수록 수그러들고 있어 안타깝고 아쉽다. 특히 김장은 돼지고기 소비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 돼짓값 안정과 상승에 좋은 친구였는데 김장 문화의 쇠퇴는 친구의 쳐진 늙은 뒷모습을 보는 것처럼 서글프다. 그런 운명을 비켜갈 수 없듯이 우리의 농촌문화도 하나둘 쇠락하고 있고 본래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최근 농촌경제연구원이 전국 17개 시도 1천가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 가정 내 김치를 직접 담근다는 비율이 62.3%로 작년 64.5% 대비 감소(2.2%p)했다. 반대로 상품 김치 구매 비중은 29.5%에서 32.5%로 증가(3%p)했다. 이는 돼짓값에 영향을 주고 있다. 김장철 특수가 사라지면서 11월 돈가가 10월보다 낮아지고 있다. 22년 23년 24년 올해 그런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같은 추세가 계속되면 양돈이 ‘가을 불황’을 넘기는데 큰 공로자였던 김장 특수는 미미해질 것이다. 특히 11월은 폭염 때 밀린 돼지들의 출하가 몰리면서 돼짓값이 하락했는데 김장 문화 쇠퇴로 더 주춤할 개연성이 높아 우울하게 한다. 그런다고 양돈업 자체적으로 다른 축제를 만들어 대처할 수 없고 이래저래 마음이 무겁다.
물론 10~11월 지방에서의 각종 축제와 조합 등 생산자단체들의 적극 참여로 한돈 소비 창출에 앞장서고 있지만, 가을철 한돈 소비의 핵(核)인 김장 문화의 쇠퇴는 소중히 간직했던 무언가를 잃어버린 허전함과 쓸쓸함이 밀려온다. 하지만 우리에겐 연간 400억원이 넘는 자조금이 있다. 소비자와 함께 하는 한돈 문화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 아이디어를 내고 고민하고 연구하길 바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