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②] “양돈 다시 시작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특별인터뷰②] “양돈 다시 시작한다면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양돈 50년 아쉽고 안타까움은?
구제역으로 돈육 일본 수출 중단
돈사 시설 표준화 만들지 못한 것
한국형 종돈 생산 기반 未구축
아내 등 가족과 많은 시간 못한 점

향후 양돈 50년 발전을 위해서는?
각종 인-허가 등 규제 대폭 완화
정부 축산직 부활 등 전문가 양성
축산소득세를 지방세로 전환해야
  • by 김오환 발행인

윤희진 회장은 직장인들의 꿈인 40세 이전에 자기 사업인 양돈장을 건설, 도전과 노력 끝에 국내 최고의 종돈과 양돈 기반을 다졌다. 외형상으로 보면 양돈으로 성공한 삶이었다. 큰 부족함이 없었고 아쉬움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십중팔구 사람들이 그렇듯 인생을 되돌아보면 잘된 것이나 잘한 일보다는 후회와 미련이 많고, 더 잘할 것이란 깊은 아쉬움이 남아있다. 회한도 있다. 하지만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면 더 잘할 것이라고 자신한다.

윤 회장도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게 무엇인지 궁금했다. “선진에 근무할 때 일입니다. 한국에 SPF(특정 병원 부재돈) 종돈장 건설을 위해 미국, 일본에 수의사를 보내고 수입도 했는데 국내 기관에서 SPF 인증기준이 없는 데다 국내 농장 위생 여건이 그걸 따라가지 못했지요. 너무 일찍 시작한 느낌이 없지 않지만, 선진서 SPF 종돈장을 건설하지 못한 게 항상 맘에 걸려요.”

윤 회장은 잠시 말을 멈췄다. 선진에 미안해서 그런지 아니면 다른 속내가 있어서 그런지 그의 입을 주시했다. “저는 한국 종돈업을 세계적인 수준으로 올리고 싶었어요. 다비 창립 후 세계 종돈 시장을 둘러보고 세계 최고인 미국에서 힘겹게 종돈을 수입했어요. 그걸 일본으로 수출하려는데 검역과정에서 PRRS 양성이 나와 좌절됐지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87년 도입돈 혈청에서부터 항체검출이 되었지요. 참으로 안타깝고 아까운 기회였고 다비로선 1차 시련이었습니다. 그게 없었다면 지금 종돈산업은 엄청 달라졌겠지요. 종돈 수입국으로 전락하지 않았을 것이고 한국형 종돈도 개발, 경쟁력을 높였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윤 회장은 한국 양돈이 산업(産業)으로 성장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산증인이자 이끈 주역이기 때문에 생산성 분야에서도 진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베트남을 비롯하여 동남아 양돈장을 가보면 태국 CP그룹의 영향력이 대단합니다. 거의 CP그룹과 관련돼 있습니다. 부러운 것은 지역은 달라도 돈사 시설이 표준화됐다는 점입니다. 그러니 주인이 바뀌어도 차이가 없어요. 생산성이 유지되고 있지요.”

한국 양돈으로 오면서 윤 회장 목소리 톤은 높아졌다. “미국 위주의 양돈시장에서 네덜란드, 독일 박람회를 통해 유럽으로 시야가 넓어졌죠. 시설 표준화를 통한 작업 표준화를 보면서 인식이 달라졌어요. 반면에 한국은 표준 설계도도 없었지요. 당시만 해도 일본 것 참고했지요. 정부가 추진한 양돈 단지만 봐도 그래요. 요즘 거점 소독 시설도 그래요. 질병을 막자는 것인지 잡지 말라는 것인지 이해가 안 돼요. 수차 건의하면 받아줘야 하는데 묵묵부답입니다. 아쉬운 게 너무 많아요.”

윤 회장이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는 게 돈육 수출 중단이다. “삼성에서 홍콩으로 수출했는데 78년 돈가 폭등으로 중단됐어요. 이후 90년대 들어 선진이 일본에 진출하면서 관심이 높아졌어요. 그러던 것이 97년 3월 대만에서 구제역이 발생, 일본 수출이 중단됐지요. 일본이 최대 돈육 수출 시장 아닙니까? 이걸 한국이 하자면서 열기가 고조됐지요. 96년 3만톤에서 98~99년에는 8만톤 이상을 팔았어요. 알다시피 2000년 3월 파주에서 구제역이 66년만에 한국에서 발생, 일본 돈육 수출이 중단돼 지금까지 오고 있지요.”

돼지고기 일본 수출 지속을 위해 농가 자발적으로 돼지콜레라박멸비상대책본부(구제역 발생 후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전신)를 설립, 사료 등 관련 업계에 모금을 나서는 등 돼지콜레라 청정화에 주야장천 나섰지만 2000년 구제역으로 물거품이 된다.

무엇보다 윤 회장은 종돈의 해외 의존에 진한 아쉬움과 깊은 회한(悔恨)을 드러냈다. “종돈은 양돈의 핵(核)입니다. 매우 중요합니다. 지금 세계는 종자 전쟁 아닙니까? 보세요. 고추니 토마토니 종자가 외국 회사로 넘어가지 않았습니까? 로열티만 하더라도 엄청 날 것입니다. 그런데 국가나 단체, 농가들이 종(種)에 대해 쉽게 생각하고 있어요. 양돈도 그래요. 2011년 구제역 때 종돈이 7천마리가 들어왔어요. 18년까지 근 8년 동안 매년 적게는 1천5백두부터 많게는 5천두까지 들어옵니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종돈(업)이 살아남겠어요. 계속 수입에 의존하니 말이요. 그러다 요 몇 년 새 1천두 안팎을 보이고 있지요. 농장에서 직접 수입하고도 있지요. 한국형 종돈을 개발할 틈이 없어요. 정부가 종돈네트워크를 통해 육성 지원하고 있지만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있어요, 등지방 얇은 종돈 수입이 늘면서 한돈 품질에 영향을 주고 있고 질병 유입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종돈 생산자 단체도 4곳이 돼 안타까워요.”

네트워크 등 종돈 정책과 관련된 이야기 나오면서 윤 회장의 안타까움은 정책으로 이어졌다. “양돈업 연간 매출이 9조를 넘어 10조원에 이르고 있어요. 축산과 관련 산업까지 포함하면 70조 안팎 되지 않겠어요. 그런데 농축산부에 축산직(畜産職)이 없어요. 말하자면 축산을 전공한 학생들이 와야 하는데 그러지 못해요. 다른 과(科) 출신들이 와서 축산 업무를 하면 애착도 덜하고 축산직에 오래 있지 않고 다른 부서로 가요. 축산이 지속 발전할 수 있겠어요? 예전에는 축산국(局) 5개과(課) 가운데 축산부서가 4곳, 방역이 1곳이었어요. 행정 빼고 모두가 축산과 출신이었어요. 요즘에는 축산정책관 산하에 3개과에 1팀, 방역정책국에 3개과 있어요. 축산이 생산, 생산성, 경쟁력 중심서 방역으로 전환됐지요.”

윤 회장의 쓴소리는 더욱 빨라졌고 거칠어갔다. “방역 중심의 축산이 되면서 각종 규제는 강화됐고, 인-허가 받는데 얼마나 어려워졌어요. 농가 책임도 없지 않지만 그렇다고 질병이 줄은 것도 아니잖아요. 식생활 보세요. 요즘 고기 먹고 밥 먹어요. 육류 소비가 쌀 소비를 앞지르고 있어요. 축산, 애지중지 키워야 해요. 축산직 공무원 부활 등 축산 전문가를 육성해야 합니다. 시급한 일입니다. 또한 정부가 할 수 있다면 축산소득세를 국세에서 지방세로 전환, 지자체에서 축산에 대한 혐오를 줄여야 합니다. 도축세 부활도 하나의 방안이지요.”

그런 안타까움과 아쉬움, ‘분노’를 삭이면서 양돈에 대한 윤 회장의 애정과 승부욕은 더욱 강해졌다. 더 철저해졌고 더 완벽해졌다. 더 잘해야겠다는 마음은 더욱 굳어졌다. 그런 정신이 다비 농장에 이식(移植)됐다. 양돈, 종돈 전문화에 더욱 매진했고, 장학금을 통해 후배, 후학 양성(전문가)에 더욱 투자했다.

윤 회장의 양돈 인생 50년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길어지면서 인터뷰 분위기는 무거웠고 긴장감이 높아갔다. 기분 전환이 필요했다. 질문을 살짝 돌렸다. 가족에 대해 미안함이 있는지 여쭤봤다. “투병 중인 아내에게 제일 미안하지요. 제가 하는 일 열심히 도와줬지요. 친구들은 모두 서울에서 사는데 아내 혼자만 시골로 내려와 농장 뒷바라지 하느라 젊은 시절 다 보냈지요. 돼지 냄새도 그렇고 파리도 많아 사는 환경이 좋지 않았거든요. 그것을 참아 내며 도와줄 때 내조가 이런 것이구나 생각했지요. 그런데 다른 것은 다 용인해도 집 담보만은 절대 허락하지 않았어요.(웃음) 또 농장 일과 사람 만나는 일로 두 아들과 많은 시간을 갖지 못했어요. 휴가도 그렇고 여행도 그렇고 자주 어울리지 못한 게 마음에 걸려요.”

윤 회장은 녹차로 입술을 축이고 수초 동안 말이 없다. 눈빛도 입술도 약간 내려갔다. 어머님 이야기를 꺼냈다. “가족사 말하는 건 그렇지만 어머님께서 제가 어렸을 때 혼자 되셨어요. 교직(敎職)에 계셨지요. 평생 아들을 챙기셨죠. 농장을 지으면 농장에서 나무를 심고 가꾸고. 선자(先慈)께서 꽃을 참 좋아하셨지요. 정원을 꾸미고 가꾸고~. 그러셨는데 그걸 못 해드렸어요. 자그마한 전원주택이나 정원을 마련해서 일도 하시고 친구분들과 어울리게 하셨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쉬움이 많아요. 회한도 되고요.” 윤 회장은 어머니께서 돌아가신 후 부의금에다 개인 돈을 더 보태 사회단체에 기부했다. <다음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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