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신년특집-프롤로그] 고급화는 한돈 경쟁력의 '또 다른 이름'
[2022년 신년특집-프롤로그] 고급화는 한돈 경쟁력의 '또 다른 이름'
맛과 품질이 한돈 전유물이던 시대 저물어
프리미엄 고기 시장서 수입산 갈수록 두각
고기 아닌 고기와도 경쟁…최대 敵 부상 중
지속가능한 한돈 위해 한 단계 더 도약할 때
  • by 임정은

몇 년 전 국내 양돈업계를 혼란과 긴장에 빠트린 사건 하나가 있었다. 스페인산 ‘이베리코’ 돼지고기가 선풍적 인기를 누리며 전문점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국내 돼지고기 시장이 개방된 지 십수년이지만 세삼 수입 돼지고기가 또 다른 위협으로 다가왔다. 그동안 수입산 돼지고기는 가격이 가장 큰 경쟁력이었다. 그런데 가격은 비싸지만 도토리만 먹고 자란 ‘고급육’으로 ‘포장’한 이베리코 돼지고기에 소비자들은 기꺼이 지갑을 열었다. 당시 미국산 돼지고기가 한돈이 아닌 스페인산 이베리코로 둔갑 판매되다 적발됐다는 뉴스는 이베리코가 한돈을 능가하는 평판을 얻고 있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맛이나 품질은 한돈의 전유물이라는 상식이 흔들리는 사건이었다.

이후 가짜 이베리코 논란이 지속적으로 불거지면서 이베리코의 인기는 초기만 못한 게 사실이다. 그러나 이베리코 돼지고기의 인기가 우리에게 남겨준 메시지만은 여전히 유효하다. 소비자들은 언제고 가격이 아닌 맛과 품질을 쫓아 한돈이 아닌 제2, 제3의 이베리코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한돈이 ‘우리 땅에서 자란 우리 돼지’를 넘어서는 특별함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수입육에 가격은 물론 맛과 품질에서도 치이는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한돈의 고급화는 바로 한돈이 지향하는 한 차원 높은, 더 탄탄한 경쟁력의 또 다른 이름이 되는 것이다.

■위협받는 한돈 차별화=그런데 왜 지금, 한돈의 고급화를 얘기해야 할까? 주지하다시피 최근 몇 년 국내 돼지고기 소비량은 매년 최고치를 경신하며 증가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 19 이후 한돈에 대한 수요는 어느 때보다 높고 이로 인해 시장도 잘 굴러가는 듯 보인다. 그럼 지금 이대로 괜찮은 것 아닌가? 그렇다면 다시 질문을 해봐야 한다. 과연 지금 한돈의 경쟁력으로 또 다른 이베리코가 나왔을 때, 한돈은 계속 지금의 시장을 지킬 수 있을까? 그 사이 한돈이 그만한 경쟁력 제고를 이뤘을까? 한돈 경쟁력에 이렇다 할 진전은 없는 사이 시장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특히 시장이 누리고 있는 호황의 크기만큼 위기도 빠르게 자라고 있다.

20~21년 한돈 시장은 코로나 19 상황이 호재로 작용하면서 돼지 값은 오히려 코로나 이전보다 올랐다. 그런데 역시나 수입육이 가만히 있지 않았다. 전체 돼지고기 수입량은 40만톤 이상을 기록했던 18~19년에 비하면 물론 적었다. 코로나 이후 물류난과 국제 돈가 상승으로 수입 여건이 좋지 않았던 탓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도 유독 냉장육 수입은 급증했다. 전체 돼지고기 수입량 가운데 냉장육 비중은 지난 18~19년 5%대 초반에서 20년 6%(1만9천톤), 21년 7.7%(2만3천톤)로 늘면서 지난해 냉장 돈육 수입량은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더욱이 한돈과 경쟁하는 수입 쇠고기 역시 20~21%이던 냉장 비중이 20년 23.3%, 21년 26.2%로 역시나 냉장육 수입이 역대 최고치였다.

그동안 저가의 냉동 수입 돈육과 냉장 한돈은 어느 정도 시장이 분리돼 있었다. 하지만 냉장육이 본격적으로 늘기 시작한다면 기존의 구도는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국내 수입 냉장 돈육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나라인 미국은 자국산 냉장 돼지고기에 대해 이렇게 홍보하고 있다. 냉장 상태로 한국에 도착할 때까지 약 15일 정도 천천히 숙성되는데 이 과정에서 육즙은 더욱 풍부해지고 육질이 부드러워져 한국에 도착할 때쯤이면 최상의 상태가 유지된다는 것이다. 실제 우리나라 농촌진흥청이 한우를 가지고 숙성이 가지는 효과를 연구한 결과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이에 따르면 한우를 1주, 2주, 3주 숙성했더니 오래 숙성할수록 전단력(낮을수록 부드럽고 연해지는)은 낮아지고 보수력(높을수록 육즙이 높아지는)은 높아지는 것으로 확인된바 있다. 이 얘기대로라면 신선 냉장 돈육으로서 한돈 맛의 차별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

■트랜드 선도하는 수입육=수입육의 위협은 단순히 물량 증가로 국한되지 않는다. 최근 몇 년 사이 수입육들이 오히려 국내 고급육 문화를 선도하는 추세가 뚜렷하다. 이베리코는 국내 소비자들이 돼지의 품종과 그에 따른 맛의 차이, 그 가치에 눈 뜨게 했다. 가짜 이베리코 논란에도 여전히 스페인 이베리코는 고가의 고급육으로 꾸준히 시장을 지키고 있는 가운데 미국은 듀록 브랜드를 출시하며 값싼 수입육을 넘어선 품종과 특별한 맛으로 차별화를 내세웠다. 또 젊은 층을 중심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토마호크 스테이크도 있다. 특히 토마호크 스테이크는 국내서 최근 다시금 불붙었던 캠핑의 인기 속에 더욱 수요가 늘었다. 지난해 네이버 소고기 관련 검색어 가운데 토마호크(4천271건, 전년비 191%↑)는 전년 대비 가장 큰 폭으로 증가, 높아진 관심과 인기를 입증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중순 현재 쇠고기 수입량은 43만7천톤으로 이미 연간 사상 최고치였던 19년(42만7천톤) 기록을 경신했다. 최근 몇 년 사이 화제가 됐던 식육 트랜드 대부분을 수입육이 주도하면서 수입량 증가를 가져올 뿐만 아니라 한돈 등 국내산 축산물과 주객이 전도될 가능성마저 커지고 있다. 수입육들이 국내 식육 트랜드의 본류로서 프리미엄을 쌓아가는 것을 그대로 두고 볼 수 없는 일이다.

■고기 아닌 고기와의 경쟁=그런데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이제 고기가 아닌 고기들과도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소비자들은 서서히 동물 복지와 환경의 가치에 눈을 뜨며 기존 축산업을 통해 생산된 고기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기 시작했다. 유로모니터의 보고서에 따르면 2020년 세계 대체육 시장은 전년 대비 33.4% 늘어난 49억3천970만달러를, 그리고 21년은 55억8천770만달러로 13% 더 성장할 것으로 추산됐다. 특히 그 중에서도 한국 대체육 시장은 성장기에 진입해 2020년 1천30만달러에서 지난해 1천390만달러 규모로 35% 증가할 것으로 추산된 바 있다. 실제 지난해 국내서 식물성 대체육 제품 출시가 잇따랐고 급기야 진짜 고기와 가짜 고기가 나란히 진열, 판매되기 시작했다. 어쩌면 지금 한돈의 최대 잠재적 위기 요인이자 적은 대체육일지도 모른다.

때문에 한돈의 고급화는 현재의 위기 요인인 수입육과의 차별화이면서 동시에 빠르게 변화해나갈 미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한 노력이기도 하다. 아직은 막연한 과제인 게 사실이다. 또 많은 전문가들은 고급화 이전에 한돈산업의 기본을 더 탄탄히 다져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생산성, 맛, 품질의 상향평준화 없는 한돈의 고급화는 사상누각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당한 얘기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한돈의 고급화로 한돈산업의 지향점이 변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시대와 소비자, 시장 역시 변화하는 가운데 한돈의 입지 역시 고정적일 수 없으며 한돈산업에 요구되는 경쟁력 역시 달라질 수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한돈 고급화는 지금 이 시대에 요구되는 한돈 경쟁력의 또 다른 이름이자 한돈이 지속가능한 산업으로 가기 위한 또 하나의 길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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