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 시장경제에서 팔리지 않는 상품이란 곧 존재가치가 없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문화도 지식도 상품이 되는 시장에서 농축산물 역시 상품의 생존 법칙이 적용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팔리는 상품을 만드는 일이 가장 기본인 동시에 핵심적인 상품 생존 전략일 것이다. 한돈 소비 제고 방안을 찾기 위해 유통, 마케팅을 따지기에 앞서 생산 단계를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고품질 한돈=올해 초 농촌경제연구원이 발표한 식품소비행태 조사 결과를 보면 소비자들이 육류 구입 시 가장 많이 고려하는 것은 역시나 맛, 품질이었으며 가장 우선해서 확인하는 정보는 원산지나 등급이 아니라 신선도로 나타났다. 맛있고 신선한 한돈. 너무나 당연하고 기본적인 그 조건 속에 잘 팔리는 한돈의 해답이 담겨 있는 것이다.
농가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은 무엇보다 기본적인 출하돈의 품질 관리다. 그런데 최근 등급판정 성적을 보면 이마저도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것은 아닌지 우려가 생기는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사양관리의 기본 속에서 품질관리가 시작된다고 강조한다. 그 중 하나가 사육단계별 사료 급여다. 특히 비육후기 사료를 급여하지 않는 농가들이 많은데 성장 후반기로 갈수록 지방 침착이 많아지는 돼지의 성장 패턴을 볼 때 비육후기 사료 급여는 필수라는 게 전문가들 지적이다. 이를 준수하지 않게 되면 과도한 피하지방이 축적되고 떡삼겹이 발생할 수 있다. 이는 소비자들에게 한돈 품질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는 것은 물론 과도한 지방을 피하려는 최근 소비자들의 성향을 고려할 때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 출하 전 절식도 중요한 과제다. 절식은 농가의 사료비 절약과 도축 시 폐기물 발생 등의 필요에서도 중요하지만 근육 내 pH 저하를 억제, PSE육(물퇘지) 발생을 줄일 수 있다. 아울러 절식을 하지 않을 경우 돼지 수송 과정에서 구토나 환축 발생은 물론 스트레스가 가중돼 이 역시 돼지 품질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이 밖에도 암수 분리사육을 통해 균일한 체중과 적정 등지방 두께의 돼지를 출하할 수 있도록 하고 항생제 잔류물질 허용 기간을 반드시 준수하는 것도 안전한 한돈 생산을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다.
도축과정도 중요하다. 특히 돼지고기의 위생, 안전성은 도축장에서 결정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국내 도축장들 대부분이 시설이 노후화된 것도 문제지만 관리 인력이 부족해 위생 관리에 허점을 보이고 있다. 국내 도축장의 검사관 인력은 법정 기준 대비 60%에도 못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위생관리 감독을 담당하는 검사관의 부족은 위생 관리도 안심할 수 없다는 얘기로 검사관 인력 충원이 시급히 요구되고 있다.
등급제 보완도 필요하다. 현재 출하되는 돼지는 모두 1+, 1, 2등급으로 분류되지만 과연 소비자들에게 등급에 따른 품질이나 맛의 차이가 확실히 전달되고 있을까? 농촌진흥청이 조사한 소비자 설문(16년 11~12월) 결과를 보면 돼지고기 품질 판단 공감도(5점 척도)에서 등급은 육질(4.08), 원산지(4.05), 유통기한(3.98), 가격(3.94) 다음인 3.92로 조사됐다. 이 말인 즉 등급이 곧 맛이나 품질과 직결된다고 인정받는 정도가 가격만도 못하다는 뜻이다. 이는 다른 한편으로는 등급제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지도 자체가 낮은 때문일 수도 있다. 따라서 등급제가 소비자들에게 품질과 맛의 척도로 받아들여질 수 있도록 소비자들 입장에서 보완해야 한다. 또 농가들은 그 등급제에 따라 높은 등급을 받기 위해 노력하면서 품질 개선과 소비자 선호도 제고의 선순환이 이뤄질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가성비’ 한돈=한돈의 가장 강력한 경쟁 상대라면 단연 수입 돈육일 것이다. 그리고 한돈이 수입육과의 경쟁에서 가장 취약한 분야는 역시 가격이다. 그리고 그 가격 경쟁력을 결정하는 것 역시 생산단계다.
가격 경쟁력은 시장 개방 초기 단계부터 한돈산업이 가장 시급히 보완해야 할 과제로 강조돼 왔지만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다. 더욱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상품의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는 최근 소비 시장의 분위기를 고려할 때 무엇보다 시급한 과제이기도 하다.
그런데 주지하다시피 국내 양돈 생산성은 선진국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 한돈협회가 취합한 한돈팜스 농가들의 지난해 평균 MSY는 17.8두. 중요한 것은 개선돼도 모자랄 판에 MSY는 16년 18두에서 오히려 0.2두가 줄었다. 이에 비해 이미 양돈생산성으로는 세계 최고 수준인 EU(유럽연합)는 양돈 생산성이 꾸준히 향상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 양돈산업에 조용한 경고를 주고 있다. 올 초 발표된 16년 기준 EU 평균 MSY는 25.4두로 전년 대비 0.4두가 늘었다. 이 중에서도 가장 낮은 성적을 보이는 영국도 MSY가 23두가 넘는다. 캐나다와 미국도 EU에 비해서는 낮지만 22~23두 수준이다.
이 같은 생산성 차이가 곧 가격 차이로 나타난다. 특히 한돈의 계절별 가격 차이가 크다는 점 역시 취약한 생산성에서 비롯되는 특징이다. 농수산유통공사가 분석한 한돈 냉장 삼겹살과 수입 냉동 삼겹살의 연중 가격 진폭(최대 값과 최소 값 차이) 계수를 보면 13~17년까지 한돈이 0.44~0.7인데 비해 수입육은 0.03~0.16으로 한돈이 월등히 높았다. 이 같은 극심한 가격 변동성은 특히 가공업이나 외식업에서 한돈 사용을 기피하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식품업체들이 사용하는 돼지고기 중 한돈의 비중은 12년 78%서 지난 16년 70%로 감소했으며 수입산을 사용하는 이유에 대해 대부분 가격을 꼽았다.
■‘가심비’ 한돈=농림축산식품부와 농수산식품유통공사가 발표한 올해 외식 트렌드이면서 외식을 포함한 소비 시장 전 영역에 걸쳐 새롭게 등장한 핵심 키워드 중 하나가 바로 가심비다. 마음의 만족을 추구한다는 점에서 가격이나 품질은 기본이고 이를 뛰어넘는 가치를 소비자들에게 제공해야 한다는 과제를 던져주고 있다. 이 같은 소비 트렌드의 변화는 돼지고기 외식시장에도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 지난 16년 크게 유행했던 무한리필 삼겹살 전문점이 불과 1~2년 만에 대다수 폐업하고 최근에는 제주 흑돼지 전문점, 이베리코 전문점으로 고급화 흐름이 포착되고 있는 것이다. 가성비를 중시하던 돼지고기 외식 소비문화가 가심비로, 어느 시장보다 빠르게 소비 트렌드가 교체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베리코 돼지고기의 경우 ‘세계 4대 진미’라는 타이틀과 함께 도토리를 먹여 방목해 키운 돼지고기라는 특별함까지 더해지면서 가격과 맛 이상의 만족감을 찾는 소비자들을 공략하고 있다. 또한 최근 ‘미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는 분위기와도 맞아 떨어지고 있다.
이는 우리에게 ‘우리나라 땅에서 나고 자란 한돈’ 그 이상을 보여줘야 살아남을 수 있는 시대가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를 뒤집어 보면 가격 경쟁력에서 밀리는 한돈에게는 이를 극복할 수 있는 다른 경쟁력을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또 다른 기회일 수 있다. 이를 어떻게 살리느냐가 가심비 시대 한돈의 기회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임정은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