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SF나 구제역만 막는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지금 한돈산업의 가장 큰 적은 농장 안에 이미 들어와 있는 PRRS 같은 소모성 질병입니다. PRRS 안정화를 위해서는 정부의 방역 순치 돈사 지원이 절실합니다.”
이기홍 대한한돈협회장은 최근 기자와 만나 현재 한돈산업이 직면한 가장 큰 과제로 ‘질병 안정화 부재’를 꼽았다. 외부에서 유입되는 ASF·구제역(FMD) 같은 법정 전염병 대응도 중요하지만, 농장 내부에 이미 상재화된 PRRS·PED·PMWS 등 소모성 질병이 생산성을 지속적으로 갉아먹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ASF는 강력한 차단방역으로 막아낼 수 있지만, PRRS는 이미 상당수 농장에 자리 잡고 있는 질병”이라며 “이제는 단순 차단 개념이 아니라 ‘안정화’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인터뷰 도중 수십 년 전 직접 기록했던 농장 노트를 꺼내 보였다. 노트에는 당시 사육 성적과 질병 발생 상황, 백신 접종 내역, 폐사율 등이 빼곡하게 적혀 있었다.
그는 “예전에는 로타바이러스나 TGE, 세균성 폐렴 같은 질병이 가장 큰 고민이었다”며 “당시에는 질병 종류도 지금처럼 복잡하지 않았고 관리 방식도 비교적 단순했다”고 회상했다.
이어 “시간이 지나면서 AR(위축성 비염)이나 일부 세균성 질병은 많이 안정화됐지만, 이후 PRRS와 PMWS 같은 소모성 질병이 본격적으로 산업 전체를 흔들기 시작했다”며 “최근에는 ASF와 구제역까지 겹치면서 농장들이 사실상 이중·삼중의 부담을 안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작 현장에서 가장 무서운 질병은 ASF보다 PRRS”라고 단언했다.
ASF는 외부 유입을 차단하면 통제가 가능하지만, PRRS는 이미 농장 내부에 존재하고 변이도 심해 지속적으로 생산성을 떨어뜨린다는 설명이다.
이 회장은 “국내 양돈장의 80% 이상은 사실상 PRRS 양성 상태라고 봐야 한다”며 “그런데도 아직까지 많은 농가들이 PRRS를 단순히 막아야 할 질병 정도로 접근하고 있다. 이미 들어와 있는 질병을 어떻게 안정화하고 피해를 최소화할 것인가로 관점을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국내 양돈 생산성이 유럽 주요 양돈국과 큰 격차를 보이는 핵심 원인 역시 질병 문제라고 진단했다.
현재 국내 평균 MSY(모돈 연간 출하두수)는 18두 안팎 수준인 반면, 유럽 주요 양돈 선진국들은 30두 수준까지 올라와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많은 사람들이 유럽은 시설이 좋아서 생산성이 높은 줄 아는데, 사실 핵심은 질병 안정화 시스템”이라며 “우리는 PRRS를 제대로 안정화하지 못하면서 생산성이 계속 발목을 잡히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가 취임 이후 가장 강하게 추진하고 있는 정책 역시 바로 ‘방역순치돈사’ 제도화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후보돈을 기존 돈군과 바로 섞지 않고 일정 기간 별도 공간에서 순치·안정화 과정을 거친 뒤 본장에 투입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그는 “40년 넘게 양돈을 하면서 가장 절실하게 필요성을 느낀 시설이 바로 순치돈사”라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깨끗한 후보돈이 농장에 들어왔는데 왜 갑자기 병을 크게 앓느냐”며 “기존 돈군이 보유하고 있는 PRRS 바이러스와 면역 체계가 충돌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기존 돈군은 일정 수준의 면역 균형을 유지하고 있지만, 외부 돼지가 들어오면서 바이러스 균형이 무너지면 농장 전체에서 바이러스 증식이 폭발적으로 일어나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를 사람의 면역 체계와 비교했다.
외부 환경 변화나 새로운 바이러스에 노출됐을 때 면역 균형이 흔들리는 것처럼, 농장 역시 후보돈 유입 과정에서 충분한 순치 과정이 없으면 질병이 다시 크게 확산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반드시 순치 과정이 필요합니다. 후보돈을 기존 돈군과 완전히 분리된 공간에서 최소 3개월 정도 안정화시킨 뒤 본장에 투입해야 합니다. 그래야 농장 전체 바이러스 폭발을 막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순치돈사 설치 자체가 쉽지 않다고 토로했다.
현행 건축법과 환경 규제, 배출시설 기준 등이 걸림돌로 작용하면서 사실상 신규 설치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그는 “방역순치돈사는 사육두수를 늘리기 위한 시설이 아니라 질병 안정화를 위한 방역 인프라”라며 “그런데 현실에서는 일반 축사와 동일한 규제를 적용받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농장 내 별도 순치 공간을 만들려고 해도 배출시설 증가 문제와 건축 인허가 문제 때문에 추진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회장은 “방역 목적 시설에 대해서는 일정 부분 제도적 예외 적용이 필요하다”며 “지금 국내 순치돈사 보급률은 10% 수준에도 못 미친다고 본다. 일부 대형 농장을 제외하면 대부분 농가들은 필요성을 느껴도 설치 자체를 못 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방역순치 시스템이 자리 잡을 경우 국내 한돈산업 생산성은 획기적으로 개선될 수 있다고 자신했다.
“현재 국내 MSY가 18두 수준인데, 질병 안정화 체계와 순치 시스템이 자리 잡으면 최소 22두 수준까지는 충분히 가능하다고 봅니다. 단순히 농가 몇 곳의 문제가 아니라 산업 전체적으로 수조 원 규모의 경제 효과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어 “생산성이 올라가면 결국 수입육 의존도를 낮추고 소비자 물가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며 “질병 안정화는 단순 방역 문제가 아니라 산업 경쟁력과 식량안보 문제”라고 강조했다.
그는 방역의 핵심은 결국 ‘기본’이라고도 말했다.
“농가들은 자기 농장에 병 들어오는 걸 가장 싫어합니다. 손 씻기, 장화 교체, 차량 동선 관리 같은 기본만 철저히 지켜도 방역의 상당 부분은 해결됩니다. 방역은 규제로만 되는 게 아니라 현장에서 스스로 지켜내겠다는 의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끝으로 그는 방역순치돈사 제도화를 위해 관계 부처와의 협의를 지속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특히 국토교통부와는 2013년 5월 31일자 건축법 시행령 5항 11호(가설건축물법)를 빌어 방역순치 돈사의 정의를 포함시키면 건폐율에 적용받지 않을 수 있다고 피력했다. 이어 기후에너지환경부와 관련해서는 방역 순치돈사를 배출시설에 포함하지 않는다는 해석과 동의만 이뤄진다면 지원사업 활성화 등 제도 개선도 신속하게 추진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회장은 “순치돈사는 단순 시설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한돈산업의 생산성과 경쟁력을 좌우할 핵심 인프라”라며 “기후환경에너지부·국토교통부 등 관계 부처와 협의를 이어가고, 국회 토론회와 연구용역, 관련 법령 및 시행령 개정을 통해 반드시 제도 개선을 이끌어내겠다”고 강조했다. 이어 “질병으로 인한 생산성 저하는 결국 농가 경영 불안으로 이어진다”며 “앞으로도 한돈협회는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반영하고 현실적인 방역 대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역설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