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돈 분야 온실가스 감축을 둘러싼 논의가 새로운 전환점을 맞고 있다. 그동안 감축 목표를 먼저 설정한 뒤 이를 현장에 일괄적으로 적용해 부담을 전가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실제 감축 효과가 과학적으로 검증된 기술을 중심으로 한 합리적인 산정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특히 정책 설계 단계부터 양돈 현장의 운영 특성과 실측 데이터를 충분히 반영하고, 감축 성과가 명확히 입증되는 수단에 대해 선택과 집중이 이뤄져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단순한 의무 부과가 아닌, 실효성이 확인된 감축 기술과 관리 방식을 정책적으로 뒷받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접근은 농가의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고, 온실가스 감축과 경영 안정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할 수 있는 지속가능한 정책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에 따라 국내 양돈산업의 구조와 여건을 반영한 ‘한국형 양돈 탄소중립 해법’을 적극 발굴해야 한다는 요구도 커지고 있다.
■지금의 감축 전략, 현장에서 효과 있나?=지금 한돈업계는 정부의 탄소 중립 달성 방식을 두고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정부가 추진 중인 양돈 분야 온실가스 감축 전략이 과연 현장에서 실질적인 효과를 내고 있는지, 현재 마련된 정책 수단만으로 2030년 축산 부문 감축 목표 달성이 가능한지, 그리고 목표 달성을 위해 무엇을 우선적으로 개선해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단순한 감축 목표 제시에 그치지 않고, 현장 여건을 반영한 실행 가능성과 정책 수용성에 대한 점검이 선행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온실가스 감축은 전 세계가 공동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지만, 그 과정에서 한돈농가가 일방적인 부담과 희생을 감내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업계의 공통된 인식이다. 특히 사육 규모, 분뇨 처리 방식, 지역 여건 등이 다양한 상황에서 획일적인 기준을 적용할 경우 농가 경영 부담만 가중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액비 순환 방식, 유럽에도 없는 한국의 고유 탄소 중립 방안=한돈미래연구소는 최근 국내 실정에 맞는 저탄소 분뇨 관리 기술에 관한 연구 용역을 통해 국내의 고유한 분뇨 처리 방법 중 하나인 ‘액비 순환 시스템’을 재조명했다. 관련 연구는 경상국립대학교 박진미 교수가 수행했다. 박진미 교수는 가축분뇨 액비 순환 방식은 유럽에도 없는 한국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한국의 양돈 탄소 감축에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연구 목적을 밝혔다.
이번 연구에 따르면 양돈장의 온실가스 배출량은 돈사 내 슬러리 저장조, 액비화, 퇴비화, 정화 방류 등 모든 배출원의 합산으로 산정된다. 이 가운데 메탄 배출량은 분뇨 고유 특성인 ‘메탄 잠재량’과 분뇨 관리 방식에 따라 달라지는 ‘메탄 전환 계수(MCF)’를 곱해 산출된다.
문제는 액비 순환 방식이 기존 피트 슬러리 방식과 구조적으로 달라, IPCC 가이드라인에서 제시하는 기존 기본값을 그대로 적용할 수 없다는 점이다. 이에 이번 연구에서는 액비 순환 방식에 적합한 메탄 전환 계수 도출 과정을 새롭게 제시했다.
■저장 기간 1.3일…메탄 배출 감소에 기여=박진미 교수는 한돈혁신센터에서 이번 과업을 수행했다. 일반 피트 돈사를 대조구로, 액비 순환 돈사를 비교구로 설정해 분뇨 저장 기간에 따른 메탄 발생량을 비교 분석했다. 분석 결과 피트 돈사는 분뇨를 완전히 비우지 않는 구조적 특성상 저장 기간이 수개월에 이르는 경우가 많았고, 저장 기간이 길어질수록 메탄 발생량이 급격히 증가했다. 반면 액비 순환 시스템은 저장 기간이 평균 1.3일에 불과해, 피트 내 호기성 미생물의 산화 작용으로 메탄 생성이 극히 제한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암모니아 농도 역시 액비 순환 돈사가 기존 피트 돈사 대비 78% 낮게 측정됐다. 연구진은 액비 순환 시스템이 분뇨의 장기 저장 구조를 제거하고 연속적인 흐름과 호기성 조건을 유지함으로써, 축사 단계에서 메탄과 암모니아 배출을 구조적으로 저감하는 저탄소 분뇨 관리 방식임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IPCC 가이드라인 관점에서도 액비 순환 공정은 폭기식 호기성 처리에 해당하며, 메탄 배출량이 매우 낮거나 무시 가능한 수준으로 간주될 수 있다는 설명이다.
■Tier1 한계…농가 노력 인정 못 받아=문제의 핵심은 ‘액비순환방식’과 같은 한국 고유의 분뇨 처리 기술이 지속적으로 고도화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현행 온실가스 배출 산정 체계에서는 이러한 기술적 진보가 제대로 반영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국내 양돈 분야의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은 여전히 IPCC의 단순 계수 기반인 Tier1 방식에 머물러 있어, 실제 감축 노력이 수치로 인정받기 어려운 구조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이기홍 대한한돈협회장은 최근 열린 '2035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안)' 공청회에서 축산업에 부과된 감축 목표의 형평성 문제를 강하게 제기했다. 이 회장은 “2022년 기준 축산업의 온실가스 배출 비중은 전체의 1.58%에 불과한데, 여기에 일률적으로 20% 감축 목표를 부과하는 것은 과도한 조치”라며 “이는 자칫 사육두수 감축으로 이어져 산업 기반 자체를 흔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새로운 배출 산정 기준이나 감축 효과를 검증할 수 있는 체계는 마련하지 않은 채, 막연히 감축만 요구하는 것은 산업을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유럽 역시 농업 부문 감축 목표의 현실성 문제로 올해 초 관련 계획을 백지화한 바 있다”며 국제적 흐름을 언급했다.
해외 전문가들의 시각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지난 10월 31일 열린 국회 토론회에서 덴마크 오르후스국립대 소머(Sommer) 교수는 “Tier2와 Tier3 모델은 온실가스 감축 효과를 보다 정밀하게 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 도구”라며 “한국은 분뇨 처리 기술 수준이 높은 만큼, Tier2 체계로의 전환이 양돈 분야 탄소중립 정책의 신뢰성을 높이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개선 방향은 ‘기술 인정·산식 전환’=이 같이 최근 한돈미래연구소 연구 결과 및 덴마크 전문가, 한돈업계의 의견을 종합하면 향후 양돈 분야 탄소 감축 정책의 개선 방향으로 △액비 순환과 같은 저탄소 기술의 공식 인정 △국가 고유 배출계수 개발 △Tier2 산정체계로의 단계적 전환이 필요하다는 데 의견이 모인다. 이에 박진미 교수는 이번 연구 결과를 국제 학술지에 발표해 액비 순환 방식의 저탄소 효과를 국제 인벤토리 체계에 공식 반영하고, 이를 국내 정책과 제도로 연결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결국 온실가스 감축은 단순한 목표 설정이나 규제 강화만으로 달성되기 어렵다. 감축 효과가 입증된 기술이 현장에서 실제로 작동할 수 있어야 하며, 그 성과를 국제 기준에 부합하게 계량·검증할 수 있는 과학적 산정체계가 뒷받침돼야 한다. 여기에 농가의 현실을 충분히 반영한 정책 설계와 제도적 지원이 함께 이루어질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감축 구조가 형성될 수 있다.
특히 한돈미래연구소가 수행한 이번 연구는 액비 순환이라는 현장 중심의 관리 방식이 온실가스 저감에 실질적인 기여를 할 수 있음을 과학적으로 입증하고, 이를 국가 인벤토리와 정책 체계로 연결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경로를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특히 한돈산업을 일방적인 규제 대상이 아닌, 기후변화 대응의 적극적인 주체로 전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는 평가다. 이는 향후 축산 분야 전반의 탄소 감축 정책이 ‘통제와 부담’ 중심에서 ‘참여와 보상’ 중심으로 전환되는 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