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개척’정신으로 양돈은 한 단계 더 발전했습니다(9/7)
당신의 ‘개척’정신으로 양돈은 한 단계 더 발전했습니다(9/7)
  • by 양돈타임스
[특별기획]당신의 ‘개척’정신으로 양돈은 한 단계 더 발전했습니다

소 값 파동 후 양돈업 투신
90년 양돈조합 이천서 설립
농장 전산관리 등 최초 도입
양돈연수원 건립 부지 기증
‘방본’ 전신 콜레라박멸위 주도
협동조합정신 몸에 밴 조합맨
오늘날 도드람조합 기반 다져
한발 앞서 비전 제시한 선구자
‘상록인상’ 대산문화상 등 수상

지난달 28일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국내 양돈업계에 몸담고 있는 인사들은 모두 모인 듯 했다. 진길부<사진> 전 도드람양돈농협조합장을 보내기 위한 자리였다. 진 전 조합장은 전날인 27일 새벽 췌장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70세. 양돈업계에 누구보다 많은 족적을 남긴 고인이었던 만큼 빈소에서 나온 고인에 대한 일화들은 그 자체로 국내 양돈업의 역사였다. 그렇게 진 전 조합장은 많은 이들의 아쉬움과 안타까움 속에 영면에 들었다.
진 전 조합장은 국내 양돈업계의 선구자·개척자로 기억된다. 서울대 잠사학과를 졸업한 그가 양돈에 발을 들이게 된 것은 한 차례 뼈아픈 실패가 가져온 인연이었다. 3년여 직장 생활을 거쳐 전공을 살리겠다는 생각으로 소를 먼저 키웠던 진 전 조합장은 소 값 파동으로 본전마저 다 날리는 실패를 맛보게 된다. 그런데 때마침 용인 자연 농원의 돼지들을 키울 기회가 생겼고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도전한 것이 그의 양돈 인생 출발점이 됐다.
그의 양돈 인생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늘 따라 붙었다. 양돈을 하는데 있어서 사료의 중요성을 간파, 당시에는 생소했던 사료OEM(주문자생산)방식을 도입했으며 브랜드를 이용한 마케팅이 낯설기만 했던 93년 일찌감치 도드람 포크를 시장에 선보이기도 했다. 또 양돈 전산관리를 93년에 시작해 국내 양돈전산 관리의 시초가 됐으며 98년엔 역시 국내 최초로 농장 실명제를 도입하기도 했다. 96년 국내 최초 양돈전문 교육기관인 도드람양돈연수원 설립도, 98년 돼지고기 일본 수출도 모두 국내 양돈업계에서는 첫 사례로 기록됐고 그 뒤에는 진길부 조합장이 있었다. 실제 그가 자갈밭을 일궈 마련한 땅을 양돈연수원 부지로 기증한 일은 업계에 잘 알려진 일화다. 또한 진 전 조합장이 경기동남부 양돈방역협의회장으로서 99년 4월 출범에 주도적으로 참여한 돼지콜레라박멸비상대책본부는 이후 가축위생방역지원본부의 모태가 됐다.
특히나 진 전 조합장이 가진 개척자로서의 면모는 그가 1~4대 조합장을 맡았던 도드람양돈농협의 역사에 가장 잘 드러난다. 도드람양돈농협의 전신은 1990년 양돈농가 13명이 중심이 돼 꾸려진 이천양돈조합이었다. 당시 1도1조합 원칙에 막혀 임의 조합에 머물러야 했지만 포기하지 않았고 마침내 96년 1월 도드람양돈축협 설립에 이르게 된다. 이후에도 어려움이 없지 않았다. 사료생산업체와 합작형태로 출범시킨 도드람이 2000년 9월 분리되기도 했지만 그런 도드람 조합을 추슬러 03년 전남·북 양돈조합 합병으로 또 한 번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이는 몸집을 키운 계기가 됐을 뿐만 아니라 도드람푸드, 도드람LPC, 사료 유통회사인 DS 등을 거느리는 기업형 협동조합의 토대가 됐다. 그렇게 10여명의 양돈농가로 시작해 일궈나간 조합은 진 조합장이 임기를 마칠 때 금융을 제외한 사업 매출만 4천억원에 이르고 750여호의 조합원을 품은 ‘잘 나가는’ 조합으로 성장했다. 이는 우리 양돈업에 있어서 농민이 주인인 협동조합의 정신은 살리면서 기업의 효율성을 동시에 취해 성공한 기업형 협동조합의 길을 열어 보였다는 의미를 갖는다.
도드람조합의 역사에서 보듯 그는 누구보다 열렬한 협동조합맨이기도 했다. 생전 그는 양돈, 더 나아가 한국 농업을 살리기 위해서는 협동조합 시스템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말해왔다. 협동조합이 발달한 덴마크나 네덜란드 등의 사례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갖고 농협의 주인은 농민이라는 대 전제 아래 민간 기업의 경영을 도입해야 살아남을 수 있다는 소신을 끝까지 밀어붙였다. 그리고 도드람조합의 성공으로 증명해 낸 것이다.
생전에 맡았던 그 많은 직함과 수상 경력으로도 양돈업계에서 진 전 조합장의 역할과 성과들을 엿볼 수 있다. 도드람양돈조합의 조합장으로 역임하면서 양돈조합협의회장, 양돈자조금관리위원회 부위원장, 한국협동조합회 이사, 돼지고기 수출연구사업단장, 분뇨처리대책위원장 등을 맡았다. 또 자랑스런 경기농협 조합자상, 대산 농촌문화상, 서울대가 동문들에게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상록인대상 등을 수상했다.
그러나 진 전 조합장은 그가 이뤄낸 최초·성공의 기록들보다 그가 제시한 한국 양돈산업의 비전으로 더 기억될 것이다. 지금도 양돈농가 최대 고민거리인 분뇨문제 해결에 있어서 분뇨처리대책위원회 초대 위원장을 맡을 만큼 누구보다 앞장섰다. 또 양돈업에 대한 인식을 돼지를 키우는 일에서 돈육 산업으로 확장시키고 세계 속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경쟁력의 중요성을 가장 먼저 역설했던 것도 그였다. 이처럼 그가 그렸던 미래 비전은 도드람조합에만 머물지 않고 항상 한국 양돈산업 전체를 품었다. 또 누구보다 앞서 나갔다. 이런 혜안이 진 전 조합장을 앞으로도 기억하고 또 우리 양돈산업에 닥칠 고비마다 그리워하게 될 가장 큰 이유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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