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평화(平和)와 악(惡)
[칼럼] 평화(平和)와 악(惡)
인간의 두 번째 마음이 악
골고루 먹게 하는 게 평화
  • by 김오환

신문을 보면 세상이 시끄럽다. 사건과 사고가 잇달아 터지는 등 조용하고 편안한 날이 없다. 서로 싸우고 비난하고 정신이 없다. 미국과 중국이 그렇고, 북한과 한패가 된 러시아와 미국과 한국이 그렇고, 정치에서는 여-야가 그렇고, 정부와 언론단체가 그렇고, 고용자와 사용자가 그렇고~. 세상이 발전-진보하는 과정이라 그럴까? 하고 위안하지만 어지럽고 혼란스러울 뿐이다. 비판과 싫어함을 넘어 증오와 분노가 넘치고 있다.

이러한 싸움도 결국은 ‘자기 앞에 (먹을)감’을 놓으려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이런 관점에서 악(惡)이라는 한자를 파자(破字)해봤다. 버금아(亞)와 마음심(心)이 합해졌다. 버금은 으뜸 다음인 둘째다. 고로 악은 인간의 ‘두 번째’ 마음이다. 이걸 보면 악이라는 게 대단히 나쁘거나 위험한 것이 아니다. 첫째가 자기 앞에 놓으려는 이기적 ‘감’의 마음이라면, 나 이외의 다른 것을 생각하는 두 번째 마음이 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두 번째 마음은 남을 희생시키는 아주 고약하고 못된 심보다. 예를 들면 빼앗으려 하거나 주지 않으려고 하는 것~등등.

세상은 그런 악의 출현을 억제하고 방지하기 위해 사회 규범과 법을 만들었다. 그런 규범이나 법의 취지에 맞게 가면 세상은 아름답고 순조롭고 평화롭다. 그런데 문제는 그 규범과 법을 고치려는 사람들이 튀어나오고 있는 점이다. 왜? 자기 앞에 감을 놓기 위해서다. 그 규범과 법은 돈이 되고 권력이 되기 때문이다. 물론 돈과 권력이 되는 ‘감’을 시대에 맞게 상황에 맞게 수정할 수 있다. 하지만 분명한 점은 많은 사람이 공감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악이다. 악에서는 권위가 나오지 않는다. 권위는 정당성이 있는 권력인데, 정당성은 사회적 합의에 의해서 나온다. 악은 정당성이 없는 것이다. 그래서 반대와 갈등만 불러올 뿐이다. 특히 민주주의에서는 논리적이며 설득력이 있어야 한다. 논리력과 설득력이 없거나 부족함에도 또한 정당성이 없거나 공감하지 못함에도 자기 앞에 감을 놓기 위해 규범과 법을 고치려 한 것이 ‘더 나쁜’ 악이다.

악의 반대말은 무엇일까? 선(善)이라 할 수 있다. 필자는 평화(平和)라 주장한다. 평화에는 악이 발붙일 수 없기 때문이다. 평화라는 한자를 파자했다. 벼(禾)가 입(口)에 골고루(平) 돌아가는 것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말하자면 사람들 스스로 노력하면서 생존-생활하고 있는데 남이 이것(평화)을 건드리면 안 된다는 의미다. 그 순간 평화는 깨지는 것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타인이 하는 일을 최대한 존중하고 간섭하지 않으려 한다.

엊그제가 한가위였다. 연휴가 길어 기뻤지만 신나지 않았다. 돼지고기 할당관세가 또 실시(1만5천톤)됐고, 자조금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은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았고, 향후 돼짓값 역시 불안해서다. 연휴 동안 곰곰 생각해봤다. 악은 무엇이고 평화가 무엇인지. 필자의 결론은 이렇다. 악과 평화는 한 끗 차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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