徐居正(서거정, 1420~1488)
茅齋連竹徑 秋日艶晴暉(모재련죽경 추일염청휘)
대 숲길 옆 초가집에 맑고 고운 가을 햇살
果熟擎枝重 瓜寒著蔓稀(과숙경지중 과한저만희)
열매 익어 늘어진 가지 성근 덩굴엔 늙은 오이
遊蜂飛不定 閑鴨睡相依(유봉비부정 한압수상의)
이리저리 나는 벌 서로 기대어 졸고 있는 오리
頗識心身靜 棲遲願不違(파식심신정 서지원불위)
몸과 마음이 고요하니 한가한 삶 이어 가리
대나무 숲으로 난 길을 지나면 이 시인이 사는 초가집이 나온다. 집 주변의 가을 풍광을 읊었다. 우선 가을 햇살이 맑고 곱다. 여러 가지 과일나무는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린 채 익어가는 열매가 무거워 축 늘어졌다. 반면에 말라가는 성근 덩굴에 늙은 오이가 달랑 하나 매달려 있다. 이리저리 날라 다니는 벌들도 봄과는 달리 한가롭게 건들거리는 듯하다. 물가의 오리도 역시 한가한 듯 서로 기대어 앉아 졸고 있다. 자못 심신이 편안한줄 알았으니 이렇게 느리게 사는 생활을 어기지 말자고 다짐한다. 평생을 관직에 있으면서 임금을 모시고 나라살림을 챙기다가 은퇴한 노재상의 여유가 좋아 보인다. *擎(경) ; 높이 솟다, 들어 올리다 *蔓(만) ; 덩굴, 뻗어나가다 *頗(파) ; 자못, 약간, 매우, 바르지 못함.
<한시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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