許蘭雪軒(허난설헌, 1,563~1,589)
燕掠斜簷兩兩飛(연략사첨양양비)
제비는 쌍쌍이 처마 끝을 스쳐 날고
落花撩亂撲羅衣(낙화요란박라의)
낙화는 어지러이 비단옷을 두드리지만
洞房極目傷春意(동방극목상춘의)
규방 어디를 봐도 봄기운이 없네요
草綠江南人未歸(초록강남인미귀)
강남에 풀 푸르러도 님은 오지 않으니
요즘에는 어림도 없는 말이지만 조선시대에는 여자가 재주가 많으면 불행해진다는 편견이 있었다. 아마도 허난설헌을 두고 생긴 말일지도 모른다. 열다섯 꽃다운 나이에 시집가서 호된 시집살이와 남편 김성립의 무관심에 마음고생을 하다 27세에 요절하고 만 허난설헌이 새댁 시절 과거 공부하러 간 남편을 그리워하며 쓴 시다. 집안에 만발한 기화요초(琪花瑤草)가 무슨 필요인가. 몸에 걸친 비단옷이 무슨 소용인가. 봄이 되어 제비도 쌍쌍이 나는데, 봄이 왔어도 남편 없는 그녀의 독수공방에 봄은 없었다. 그녀는 아마도 이 시를 남편에게 보내지는 못하고, 혼자서 썼다가 찢어버리기를 무수히 반복했으리라. *掠(략) ; 빼앗다, 스쳐 지나가다 *簷(첨) ; 처마 *撩亂(요란) ; 가지런하지 못하고 어지럽다 *極目(극목) ; 보이는 곳 어디에나. <한시연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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