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이석주가 돼지 키워서 이석주가 팝니다
[특별인터뷰] 이석주가 돼지 키워서 이석주가 팝니다
51세 늦깎이 때 양돈에 입문
23년만에 8만두 농장 일궈

IMF때 위기, 사료 현금화로 넘겨
2013년 해남에 청청 종돈장 완공

종돈 생산 유통 가공 등 ‘통일’
생산자 소비자 모두에게 이익

“사업가의 중요한 덕목은 신뢰”
세계 최고 돼지고기 생산이 꿈

이석주 태흥한돈법인 회장
  • by 김현구
이석주 태흥한돈법인 회장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돼지고기 생산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최대 목표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석주 태흥한돈법인 회장은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최고의 돼지고기 생산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최대 목표라고 힘주어 말한다.

“이석주가 키워서 이석주가 팝니다.” 전북 익산 태흥한돈 육가공공장에 들어서자 이 문장이 기자의 눈을 사로잡았다. 문장을 보는 순간 ‘이석주’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굉장한 프라이드가 느껴졌으며, 이름이 곧 돼지 품질을 보장하는 보증 수표 같았다.

이석주 회장은 태흥한돈의 설립자이자 지금의 태흥한돈영농조합법인의 회장이다. 태흥한돈은 1994년 전북 고창에서 태흥축산으로 처음 출발해 2002년 태흥종축 설립, 2012년 돈육 가공 유통을 위한 육가공장 건립을 통해 태흥한돈영농조합법인으로 거듭났다. 현재 전북 고창, 전남 영광·김제·해남 농장 총 4곳에서 종돈과 모돈, 비육돈 8만두 규모로 운영되고 있으며, 단일농장으로는 전국 최고의 규모를 자랑한다.

이 같이 태흥한돈은 개인이 양돈장에서 출발, 종돈장에서 육가공장까지 진출한 독특한 케이스로 종돈부터 가공, 유통까지 수평계열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특히 태흥한돈의 설립자 이석주 회장이 처음으로 양돈을 진출한 때가 1994년, 그의 나이 51세 늦깎이 때 양돈에 입문하면서 20여년 만에 단일 규모로는 전국 최고의 양돈장을 일구어냈다.

기자를 만나자마자 이 회장은 “로비에서 ‘이석주’가 키운 돼지, 파는 돼지 캐치프레이즈를 보셨냐? 내 이름을 내걸음으로써 고객들에게 무한 신뢰를 준다는 의미로 자신감 있게 내걸었다. 종돈부터 사료, 유통까지 3통을 이룬 태흥한돈의 돼지고기는 대한민국에서 최고의 고기일 것”이라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첫 인사 후 이석주 회장과 함께 대한민국 최고의 돼지고기 생산 및 판매시스템을 갖추기까지의 23년의 역사를 거꾸로 돌려 1994년 당시로 돌아가 보았다. 그는 “양돈을 늦게 시작한데는 다 이유가 있었다. 어려서부터 장사란 장사는 안 해 본 것이 없고 양돈을 하기 전에는 염전을 통한 소금 유통을 했지만, 90년대 소금 수입이 자율화되면서 수익이 급감할 것으로 예상, 다른 사업을 구상하던 중 양돈을 접했다”고 회고했다. 양돈을 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지인이 양돈을 하던 중 적지 않은 동물약품 대금이 외상으로 거래되고 있었다는데 큰 인상을 받았다고 한다. 큰 금액을 외상으로 거래할 수 있는 정도의 사업 분야라면 리스크도 크지만 충분히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50세 나이임에도 또 다른 도전을 결심, 모든 사업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양돈업에 뛰어들었다. 그 시기가 1994년, 태흥한돈의 출발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미 많은 사업을 통해 사업 노하우는 터득 했지만 양돈을 모르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리스크였다. 그의 사업 노하우는 사람과 돈만은 철저히 관리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투자할 목돈은 충분히 마련했으나, 함께할 사람을 찾지 못해 전전긍긍했다. 하지만 주의의 도움과 추천이 있었다. 어렵게 추천 받은 인재 2명을 삼고초려 끝에 영입한 이후에야 전북 고창에 모돈 1천200개 수준의 양돈장을 건립, 본격적으로 양돈을 시작했다.

모돈 1천200두는 그 때 당시만 해도 파격적인 규모였다. 이에 대해 그는 “양돈을 몰랐기 때문에 큰 규모로 건립이 가능했다. 지금 생각하면 아찔했지만 결론적으로는 가장 잘 한 선택 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러다 1997년 첫 번째 위기가 닥쳐온다. IMF로 인한 환율 급등으로 국내 사료 가격 폭등에 공급도 원활치 못하게 된 것이다. 사료 파동이 일어난 것이다. 그러나 사료 회사의 도움으로 첫 번째 위기를 잘 극복하고, 새로운 노하우를 터득했다. 새로운 노하우란 사료 대금을 외상에서 현금 거래로 바꾼 것. 그는 “그 당시 사료는 외상으로만 거래하는 줄 알고 있었지만, 현금 거래를 하면 20% 할인을 해 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며 “즉각 외상거래에서 현금 거래로 전환, 사료 대금을 크게 절약할 수 있어 지금까지 사료는 현금 거래를 이용하고 있으며, 다른 분야 또한 절대적으로 현금으로 거래해 생산비를 절약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후 태흥축산은 여러 농장을 인수하며 규모를 넓혀갔다. 2000년 영광의 농장을 매입하고, 2004년에는 김제 농장을 인수한다. 그리고 대망의 2013년 질병 청정지역인 전남 해남에 농장 GGP 농장을 준공한 것이다. 2002년 설립된 태흥종축이 GGP건설로 종돈장 운영 10년 만에 GP농장, 비육농장에 이어 GGP 농장까지 갖춰 종돈 전문화 시스템을 갖추게 됐다.

이에 이 회장은 “양돈장 시작 이래 우리 종돈을 만들고 싶었다. 이에 지난 13년 대규모 투자를 통해 전남 해남에 최신식의 GGP 농장을 건설, 남부럽지 않은 우리 종돈의 생산 꿈을 실현했다”며 “현재 바로 옆 부지를 매입해 또다른 GGP 농장을 건설 중에 있어 태흥의 뿌리가 되는 종돈 생산 능력이 더 높아질 것으로 기대되며 앞으로 태흥의 돼지고기 맛은 더 빛이 날 것”이라고 활짝 웃었다.

그해 GGP 농장 준공에 이어 육가공공장이 건립되며, 종돈부터 사육, 가공·유통까지 수평계열화 시스템을 완성시켰다. 양돈업을 시작한 초로(初老)의 한 개인이 20년도 채 되지 않는 세월동안 쉴 틈 없이 달려온 결과, 양돈업에서 커다란 한 획을 그은 것이다.

육가공공장 건립 배경에 대해 그는 “돈가 불안정 속에 육가공업계와의 마찰을 피하기 위한 이유가 가장 크다”며 “이를 통해 유통단계도 줄이고 유통마진을 소비자에게 돌려줄 수 있다. 돼지 사육농가는 제 값을 받고 공급하고, 소비자도 값 싸고 양질의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한다는 것이 궁극적인 설립 배경 이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이 태흥의 이름을 걸고 생산되는 돼지고기는 짧은 시간에 소비자들에게 인정받았다. 지난해 소비자시민모임으로부터 ‘우수축산물브랜드’로 선정됐으며, 특히 돼지고기 이력관리가 투명해 고객들의 신뢰가 두텁다. 이는 무엇보다 종돈부터 가공, 유통까지 100% 계열화 시스템을 갖췄기 때문이다.

인터뷰를 진행하며 그의 꿈은 완성 단계에 접어들지 않았나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생각은 달랐다. 여전히 새로운 꿈을 꾸고, 또 다른 목표를 항상 구상한다는 것. 이 회장은 “꿈을 이뤘다고 정체돼 있으면 안 된다는 생각에 항상 새로운 사업을 구상하고 있다. 이를 위해 규모를 확장할 계획을 가지고 있다며, 현재 8만두서 10만두 이상으로 확대하는 것이 목표다”고 힘주어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은 “양돈과 육가공을 하면서 가장 중요한 원칙은 바로 신뢰에 있다”면서 “선의의 경쟁을 통한 직원관리, 외상거래 지양, 서두르지 않고 제대로 된 좋은 제품을 만들어 대한민국 최고의 돼지고기 생산을 넘어 세계 최고 품질의 돼지고기 생산을 위한 시스템을 갖추도록 노력 하겠다”고 역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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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병운 2021-05-24 11:35:47
할아버지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