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분석] 역대급 돈육 수입…올해가 끝이 아니다?

EU산 급증…韓 EU 시장 3위 부상 中‧日‧比 수입 감소 상당량 韓 흡수 中 향후 돈육 수입 회복 가능성 낮아 比·베 ASF 회복 시 수입 다시 줄수도 中 중심서 벗어나는 세계 돈육 시장 韓, 수출국 경쟁 격전지 될 가능성

2026-09-30     임정은

올해 한국이 유럽연합(EU) 돼지고기 3위 수입국으로 올라섰다. 한국이 EU산 돼지고기 주요 수입국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수입을 늘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우리나라 올해 돼지고기 수입량은 역대 최고 수준을 경신하고 있다. 그런데 그 배경을 들여다보면 올해 한국의 역대급 돼지고기 수입이 일시적 흐름이 아닐 수 있다는 불안이 높아진다.

■韓, EU 3위 시장으로=올해 우리나라 돼지고기 수입이 최고치 기록을 경신하고 있는 주된 원인은 EU산 돼지고기의 수입이 급증한 때문이다. 그리고 EU에 있어서 한국은 구세주나 다름없었다. 최근 EU 집행위원회에 따르면 상반기 EU 돼지고기 수출이 215만톤을 기록, 25년 같은 기간 218만톤 대비 1.2% 감소했다. 최대 수출국 스페인이 ASF 여파로 수출이 제한됐던 때문으로, 스페인의 수출은 작년보다 무려 18% 급감했다.

수입국별로 보면 주요 시장에서 일제히 부진한 실적을 거뒀다. 최대 수출 시장인 중국이 20%(59만톤→47만6천톤) 가까이 감소했고 영국이 6%(42만톤→40만톤), 필리핀이 23%(18만7천톤→14만4천톤), 일본이 20%(14만5천톤→11만7천톤) 감소하는 등 상위 5개 국가 가운데 4개 국가에서 수입이 줄었다. 반면 한국 수출은 상위 5개국 가운데 유일하게 늘었을뿐만 아니라 올해 20만2천톤을 기록, 전년 동기(13만3천톤)보다 무려 52% 급증했다. 그 결과 한국은 25년 중국, 영국, 필리핀, 일본에 이어 5위 규모 수입국에서 올해 중국, 영국 다음으로 큰 수입국이 됐다.

EU가 중국을 비롯해 나머지 국가에 대한 수출이 감소하면서 발생한 잉여 물량 대부분을 한국이 받아낸 때문이다. 중국의 경우 자국 내 생산량 증가로 돼지고기 수입을 줄이고 EU 돼지고기에 반덤핑 관세까지 부과하면서 물량이 크게 줄었다. 또 EU 최대 수출국 스페인의 ASF까지 겹치면서 일본, 필리핀 등 주요 시장에 대한 수출까지 제한됐다. 이로 인해 EU의 돼지고기 수출이 고전할 수 밖에 없었지만 한국이 그 부진을 상당 부분 만회해준 셈이다.

■韓 대체 시장 역할 계속?=문제는 올해 한국에 EU산 돼지고기가 몰린 이유에 비춰보면 앞으로도 한국의 돼지고기 수입이 과거 대비 높은 수준을 유지할 가능성을 배제키 어렵다.

무엇보다 중국은 앞으로도 돼지고기 수입을 다시 늘릴 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점 때문이다. 장기적으로 자국 내 돼지고기 생산량 증가와 함께 육류 소비 패턴의 변화로 돼지고기에 대한 소비가 점차 줄고 있어서다. 올해 8월말 기준 중국의 돼지고기 수입은 전년 동기 대비 29% 감소했다. EU산 돼지고기에 대한 반덤핑 관세 때문이 아니더라도 향후 중국의 수입이 줄면서 세계 시장에서는 중국 시장의 빈자리가 더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그런데 올해 EU산 돼지고기뿐만 아니라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 분쟁을 벌일 당시에도 한국은 중국을 대신해 미국산 돼지고기를 받아내는 역할을 한 바 있다. 최근 중국의 돼지고기 수입물량 감소와 한국의 수입량 증가가 전혀 무관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앞으로도 한국은 유럽산을 비롯해 주요 수출국들에 있어서 중국 대체 시장의 역할이 주어질 수 있다.

ASF 관련된 흐름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올해 한국의 돼지고기 수입이 증가한 데는 스페인의 ASF가 결정적 배경이 됐다. 한국은 EU와는 ASF 지역화를 체결, 일본이나 필리핀으로 가지 못한 물량이 한국으로 몰리게 된 때문이다. 이는 앞으로도 다른 EU 수출국에서 추가적인 ASF 상황이 발생했을 때 한국으로 물량이 쏠릴 수 있는 중요한 조건이 된다. 특히 EU 내 ASF 확산은 여전히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상황이다. 네덜란드, 프랑스 등 다른 주요 수출국들도 ASF 안전지대는 아니며 이들 국가들에서 ASF가 발생한 경우 한국으로 EU산 돼지고기가 몰릴 수 있는 위험이 높다.

지금 당장은 필리핀이 지난 5월 스페인과 ASF 지역화를 체결, 필리핀으로 물량이 분산될 여지가 생겼다. 하지만 필리핀이 과거부터 돼지고기 수입이 많았던 나라는 아니었다. 2019년 ASF가 발생하면서 돼지 사육두수가 급감, 돼지고기가 부족해지면서 수입을 늘렸다. 필리핀 돼지고기 수입물량은 2020년만해도 17만톤으로 세계 10위 정도였으나 25년 71만여톤으로 4배 이상 급증했다. 필리핀에서는 여전히 ASF가 발생하고 돼지고기 수입도 많이 하고 있지만 동시에 사육두수 재건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얼마 전 필리핀 정부는 ASF 백신 판매를 허용하면서 돼지 사육두수가 회복에 대한 강한 의지를 나타낸 바 있다. 베트남도 ASF로 최근 몇 년 수입이 크게 늘어난 경우로, 향후 이들 국가에서 중국과 마찬가지로 ASF를 극복하고 다시 수입을 줄여나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것이다. EU뿐만 아니라 미국, 브라질 등 다른 주요 수출국도 이들 시장이 줄어들 가능성에 대비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리고 수출국들에서는 이미 시장 확보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진단이 나오고 있다.

최근 라보뱅크는 ‘2026 세계 돈육 시장 지도’를 통해 세계 돼지고기 무역이 중국 중심 모델에서 벗어나 더욱 세분화되고 지역적으로 분산된 시장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규정한 바 있다. 특히 이로 인해 수출국 간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는 점을 최근 세계 돼지고기 무역 시장의 주요 변화상으로 지목했다. 그리고 이처럼 수출국 간 치열해지는 경쟁 속에 올해 우리나라 돼지고기 수입량이 역대급 기록을 세우고 있는 것이다. 때문에 더욱 그 경쟁이 치열해질 수 있는 미래, 한국은 돈육 수출국들의 전쟁터가 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려워 보인다. 그리고 올해가 그 시작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