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6주년 특집Ⅱ②] 6년 연속 ‘질병 제로’...철옹성 방역이 힘
첫 입식 이후 6년간 청정 사수 환기 시스템 통해 냄새도 차단 無질병 작년 MSY 28.6두 기록 세분화된 극도의 방역 체계 구축 돈사별 전용 장화 갈아신기 정착 내부직원과 외부 교육생 차단 철저 사료‧출하 차량 내부로 진입 금지
대한민국 양돈 산업의 미래를 보여주는 현장은 생각보다 조용했고 예상보다 철저했다. 경남 하동에 자리한 한돈혁신센터. ‘냄새 없는 농장’이라는 목표와 ‘질병 없는 돈군’이라는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구현되고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최근 직접 현장을 찾았다.
센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첫 관문은 차량 소독이었다. 터널식 소독기를 통과한 뒤에야 내부 진입이 가능했다. 그러나 진짜 방역은 그 다음부터 시작됐다. 사무동 앞에 마련된 방명록에 서명을 하고, 대인 소독기를 거쳐야만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단순한 절차처럼 보이지만 이곳에서는 예외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최호윤 한돈혁신센터 차장(관리 총괄)과 최근 새롭게 부임한 박홍식 한돈혁신센터 원장은 센터 로비에서 기자를 직접 맞이하며 센터의 모든 운영은 방역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으며 어느 누구라도 방역 절차는 준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돈혁신센터는 부지 면적 3만3817㎡, 축구장 약 4.7배 규모의 공간에 교육 연구동과 번식사, 후보사, 자돈사, 비육사 등 총 6개 동으로 구성돼 있다. 겉으로 보기에는 현대화된 대규모 농장이지만 내부를 들여다보면 스마트 장비와 차단 방역이라는 두 축이 유기적으로 맞물려 돌아가고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특징은 냄새였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혁신센터 주변에는 냄새가 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 최호륜 차장은 “중앙집중식 환기 시스템과 에어워싱 탈취 설비가 결합된 구조로, 돈사에서 발생하는 공기는 외부로 나가기 전 반드시 정화 과정을 거친다”며 “여기에 저농도 액비를 24시간 순환시키는 발효액 시스템이 더해져 냄새의 원인을 사전에 차단한다”고 강조했다. 즉 혁신센터에서 냄새는 단순한 저감이 아니라 발생을 억제하는데 가까운 접근인 것이다.
하지만 이곳의 진짜 경쟁력은 냄새가 아니라 질병이 없는 청정 농장을 구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0년 첫 입식 이후 6년간 질병 없는 청정 돈군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단순한 성과를 넘어 대한민국 방역의 기준으로 평가된다.
그 배경에는 극도로 세분화된 출입 통제 시스템이 있다. 직원은 물론 외부인, 교육생까지 모두 동일한 원칙을 적용받는다. 기본적으로 타 농장 방문 이후 48시간이 지나야 출입이 가능하며, 농장에 들어서기 전 반드시 샤워와 의복 교체를 거쳐야 한다. 개인 소지품 역시 예외는 없다. 휴대전화나 담배까지 모두 자외선 살균기를 통해 소독해야 반입이 허용된다.
돈사 내부로 들어가는 과정은 한층 더 까다롭다. 외부 신발에서 농장용 신발로, 다시 돈사별 전용 장화로 갈아신는 다단계 구조다. 공구나 장비 역시 사전 허가와 소독 없이는 반입이 불가능하다.
외부 차량과 물류 흐름은 완전히 분리돼 있다. 사료 차량은 농장 내부 진입이 금지되며, 외부에서 하차한 뒤 별도의 과정을 통해 반입된다. 지대사료나 기자재 역시 반입창고에서 24시간 이상 자외선과 오존 소독을 거쳐야만 내부로 들어올 수 있다. 이 과정에서 내부 직원과 외부 인력의 직접 접촉은 철저히 차단된다. 모든 소통은 전화로 이뤄진다.
출하 차량 역시 예외가 아니다. 터널식 소독을 마친 뒤 제한된 구역까지만 접근할 수 있으며, 운전자는 원칙적으로 차량에서 하차할 수 없다. 불가피한 경우에도 별도의 방역복과 장화를 착용해야 한다.
이처럼 ‘과하다’고 느껴질 정도의 방역 절차는 결국 숫자로 증명된다. 2025년 기준 상시 모돈 261두 규모에서 PSY 28.2두를 기록했고, 수태율 94%, 분만율 93.2%라는 높은 번식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출하일령은 150일대를 유지하며 회전율을 최적화했고, 사료요구율(FCR)도 3.07 수준으로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최호윤 차장은 높은 생산성 유지 비결에 대해 “특별한 비결은 없다. 질병이 없으니 성적이 따라오는 것”이라고 말했다. 단순하지만 한돈산업에서 가장 어려운 전제를 충족하고 있다는 점에서 무게감이 느껴지는 답변이었다.
한돈혁신센터는 단순한 생산 농장이 아니다. 스마트 축산 기술을 실증하고, 이를 교육과 인재 양성으로 연결하는 ‘플랫폼’에 가깝다. 실제로 교육생의 경우 생산시설 출입을 제한하고 교육연구동 중심으로 운영하는 것도, 방역과 교육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한 설계다.
교육동을 직접 견학 및 취재를 마치고 나오며 다시 한 번 소독 절차를 거쳤다. 짧은 방문이었지만 한 가지는 분명해졌다. 이곳에서 말하는 혁신은 화려한 기술이 아니라 기본을 끝까지 지키는 집요함에 가깝다는 점이다.
질병을 막기 위한 작은 원칙 하나하나가 모여 결국 생산성을 만들고, 그 생산성이 산업의 미래를 만든다. 한돈혁신센터는 그 단순한 사실을 가장 엄격한 방식으로 증명하고 있었다.
한돈혁신센터, 현장 적용 가능한 기술로 승부
현장 중심 실증 연구에 속도
기관과 협력 다양한 연구 유치
노후돈사 액비순환 도입 연구도
ASF로 중단됐던 교육사업 재개
한돈혁신센터가 ASF(아프리카돼지열병)로 중단됐던 교육 활동과 연구 과제를 재개하며 본격적인 재도약에 나섰다. 특히 최근 30여 년간 공직에서 축산 행정을 담당해온 박홍식 한돈혁신센터 원장이 새롭게 부임하면서, 현장 중심의 실증 연구와 교육 기능 강화에 한층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박 원장은 부임 이후 가장 먼저 혁신센터의 방향성을 현장에 바로 적용 가능한 기술 검증으로 설정했다. 단순한 연구를 넘어, 실제 농가가 사용할 수 있는 수준까지 끌어올리는 것이 핵심이라는 설명이다.
실제로 한돈혁신센터는 지난 4년간 다양한 연구 과제를 수행하며 현장 중심의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2022년부터 진행된 구제역 백신 항원성 실험과 피내접종용 백신 적용 시험을 비롯해, 돼지 마이크로바이오옴 유래 규명 연구, 스마트축사 데이터 수집 사업, 인공지능 학습용 생체 데이터 구축 등 분야도 다양하다.
여기에 모돈 번식능력 향상을 위한 연구, 밀폐공간 감염병 감시 시스템 개발, UV LED를 활용한 비타민D 생성 촉진 실험 등 생산성과 질병 관리, 환경 개선을 아우르는 연구가 이어졌다. 최근에는 ‘제3세대 자율형 양돈 K-스마트축사 통합관리 플랫폼’ 상용화 과제와 구제역 백신 국산화 연구에도 참여하며 역할을 확대하고 있다.
박 원장은 “이러한 연구들은 단순한 성과 축적이 아니라, 향후 한돈산업의 표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며 “혁신센터가 축적한 데이터를 기반으로 보다 정밀한 사양관리와 질병 대응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앞으로도 다양한 기관과 협력해 더 많은 연구를 유치하고, 이를 현장에 확산시키는 데 집중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특히 박 원장이 강조하는 분야는 냄새 저감이다. 그는 공직 생활 동안 가장 절실하게 느낀 과제로 악취 문제를 꼽았다. 박 원장은 “한돈산업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지역사회와의 갈등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며 “그 출발점이 바로 냄새 저감”이라고 말했다.
이를 위해 혁신센터는 현재 운영 중인 액비 순환 시스템을 한 단계 발전시키는 연구를 준비하고 있다. 기존에는 신축 돈사 중심으로 적용되던 시스템을, 기존 노후 돈사에도 설치할 수 있도록 개선하는 것이 목표다. 박 원장은 “대부분 농가가 기존 시설을 활용하고 있는 현실을 고려할 때, 적용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며 “현장에서 바로 쓸 수 있는 기술로 발전시켜 국내 양돈농가의 냄새 저감에 실질적으로 기여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한돈혁신센터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으로 중단됐던 현장실습교육(WPL)을 재개하고, 현장 밀착형 교육도 강화한다. ‘2026년 번식·경영 기본과정’은 총 3기에 걸쳐 18명을 대상으로 운영되며, 실습 중심 교육을 통해 농가 경쟁력 제고에 나설 계획이다.
박 원장은 “ASF 이후 위축됐던 교육과 현장 교류를 다시 활성화해 축적된 기술과 데이터를 농가에 확산시키는 데 집중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