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6주년 특집①] 지속 가능한 한돈, 질병 극복이 시작이다
갈 길 먼 한돈, 질병에 발목 잡히다 상재화된 ASF…재발의 불안도 지속 소모성 만연, 농장 매일 질병과 전쟁 한돈 경쟁력은 선진국과 더 멀어져 바이러스 계속 변이 진화 ‘설상가상’ V 변해도 철저한 방역‧관리가 최선 기후 변화로 신종 질병 출현‧확산도 인간-동물-환경 포괄 원헬스 관심을
새해 벽두부터 ASF 발생 소식이 양돈업계를 긴장케 했다. 지난 2019년 국내 처음 ASF가 들어온 이후 한해 발생 건수는 첫해인 19년의 14건을 넘은 적이 없었다. 잊을만하면 한 번씩, 딱 그 정도의 발생 빈도를 보여왔다. 그런데 올해는 1월에만 4건, 그리고 2월에는 17건으로 하루건너 한 번씩 발생 소식이 들리면서 양돈현장은 혼란 그 자체였다. 왜, 어떻게 전국 각지로 퍼져나가는지 이유를 알 수 없어 더욱 공포스러웠다. 다행히 3월 들어서면서 ASF 발생이 소강상태로 접어들었지만 ASF는 이미 언제든 다시 터질 수 있는 전염병이 됐다. 거의 전국이 ASF의 활동 무대가 되면서 재발의 불안과 공포는 더욱 커졌다.
ASF 이전에 구제역이 있었다. 지금은 백신이 있어 피해가 제한적이지만 지난 2000년과 2010년 발생한 구제역은 한돈 수급의 변수 그 이상의 파급력을 보였다. 한국 양돈업의 역사를 바꿔놓은 중대 사건으로 기록될 정도였다. 그런데 이후 백신 접종을 시작하면서 이전만큼 그 파괴력이 크지 않았지만 구제역은 결정적인 순간, 주로 수출과 관련해 한돈 산업을 번번이 주저앉혔다. 그리고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현재까지도 ASF와 함께 우리 양돈산업에 커다란 멍에가 되고 있다.
구제역, ASF와 같은 악성 가축 전염병만이 아니다. PED, PRRS 등 양돈장의 소모성 질병은 우리 양돈산업이 선진국 대열에 합류하지 못하는 주된 원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해 피해액만 정부 추산 5천억원 수준으로 집계되고 있다. 그런데 그 피해는 생산성 저하와 그에 따른 경제적 손해에 그치지 않는다. 한돈 경쟁력 저하의 주된 원인이 되면서 값싼 수입 돼지고기가 밀고 들어올 수 있는 원인을 제공하고 있다. 일상적이고 지속적이라는 점에서 그 피해는 악성 가축 전염병 그 이상이다.
새로운 시대, 새로운 도전 과제들이 지속적으로 양돈산업에 주어지고 있지만 새로운 시대에 발맞추기에 양돈산업의 발목을 붙잡는 질병의 무게가 너무 무겁다. 이는 곧 우리 양돈산업이 해결하고 극복해야 하는 많은 과제가 있지만 질병이야말로 양돈산업의 경쟁력 제고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첫 번째 필수 과제라는 얘기이기도 하다.
■질병, 한돈의 발목을 잡다=한돈산업을 둘러싼 외부 환경은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그에 맞춰 한돈산업에도 새로운 시대에 적응해야 하는 과제들이 주어져왔다. 거대한 시장 개방의 흐름 속에서는 한돈의 생존 그 자체가 최대 화두였다면 친환경 시대로의 진입은 생산 기반에 대한 위협과 함께 우리 산업에 새로운 책임을 던졌다. 각 시대마다 고민은 달랐지만 결국 하나의 목표, 즉 한돈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라는 궁극적 목표는 변함이 없었다. 그런데 이 같은 궁극적 목표만큼이나 변함없는 한돈산업의 고질적 문제들도 분명 있다. 그리고 그 중 가장 긴요한 문제를 꼽으라면 단연 질병일 것이다.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면 양돈산업에 있어서 각종 규제들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 질병이 있다. 2010~11년 최악의 구제역은 양돈산업에 막대한 피해를 남겼다. 그러나 그 피해보다 정부의 정책이 농가에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하고 정부의 간섭을 늘리는 쪽으로 방향을 튼 계기가 됐다는 점이 더 뼈아프다. 양돈농가들 운신의 폭을 제한하는 각종 규제의 총체라 할 수 있는 허가제도 당시 구제역과 관련된 후속 조치의 하나였다.
또한 한돈이 선진국들과의 경쟁에서 결코 앞설 수 없는 결정적 이유도 질병의 문제가 크다. 질병으로 인한 생산성 손실은 결국 시장에서 한돈의 낮은 가격 경쟁력으로 이어지기 때문이다. 실제 그 차이는 쉽게 따라잡기 어려운 수준이다. 주요 수출국들과의 MSY 차이는 10두를 훌쩍 넘는다.
그런데 더 심각한 문제는 시장 개방이 시작되던 시점과 관세 장벽이 완전히 사라진 지금, 선진국과의 경쟁력 차이는 조금도 줄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경쟁력 강화를 십수년 외쳤지만 한돈의 경쟁력은, 적어도 생산성에 있어서는 말 그대로 제자리걸음이다. 그리고 그 결과 돼지고기 수입량은 꾸준히 우상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모두 질병의 문제로 치부할 수 없지만 질병의 문제를 외면하고서는 결코 설명할 수도, 개선점을 찾을 수도 없다는 점 또한 분명하다.
질병 문제가 이토록 끈질기게 양돈산업을 괴롭히는 이유는 물론 사양관리, 차단방역 등에서 여전히 허점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질병이 더 강력해지고 통제하기 어렵게 변모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양돈장의 최대 골칫거리로 불리는 PRRS가 그렇다. 최근 PRRS가 더 독해졌다. 실제 현장에서 그 피해가 이전 PRRS를 능가하며 그 피해로 돼지 출하가 줄고 있다는 얘기가 들릴 정도다. PRRS는 지속적으로 변이하며 기존 농가의 방어수단을 무력화하고 양돈 생산성의 최대 적으로 계속 군림하고 있다.
그러나 PRRS가 계속 그 모습을 바꾼다고 농가에서 해야 할 일까지 바뀌는 것은 아니다. 외부로부터 들어오는 바이러스를 최소화하기 위한 소독, 샤워 등의 기본 차단 방역부터 후보돈의 격리 순치 과정, 돈방의 청결 유지와 적절한 백신의 선택과 접종, 그리고 돼지들이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환경 조성까지 기본적인 사양 및 방역 사항들은 여전히 질병에 있어서 중요하고 또 가장 효과적인 대응 방안이다.
■기후 변화와 돼지 질병=전 세계적인 기후 변화는 돼지 질병에 대한 대응을 한층 더 어렵게 하고 있다. 기온이 오를수록 고온 스트레스로 면역력이 떨어지며 질병에 취약한 상태가 되는 것은 물론 폭염으로 인한 폐사도 심각한 수준이다. 그런데 이뿐만이 아니다. 기후 변화는 새로운 동물 질병의 출현과 더 넓은 지역으로의 확산을 유발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나 볼 수 있던 럼피스킨이나 ASF가 이제는 한반도까지 침범해 들어왔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전에 겪어보지 못했던 동물 질병들이 들어오는 일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때문에 기존의 방역 체계와 수단으로는 이 같은 질병들을 다루는 일에 한계가 분명 있을 수밖에 없다. 특히 동물 질병의 확산만큼이나 인수공통감염병의 증가도 뚜렷하게 나타나는 변화다. 포유류에서 보고된 조류인플루엔자는 이미 폭발적인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이는 포유류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의 전염 위험이 높아진다는 신호로 해석되고 있다.
이 같은 변화 속에서 등장한 개념이 ‘원헬스’다. 인간과 동물, 환경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시각에서 출발한다. 매일매일이 질병과의 싸움인 양돈장 현실에서 ‘원헬스’적 접근이 받아들여지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기후변화와 인수공통전염병 위협의 증가, 항생제 내성의 문제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높아질 수밖에 없다. 지금부터라도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다.
건강한 환경에서 건강한 돼지를 길러내는 일은 결국 질병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동시에 지금 이 시대에 맞는 경쟁력을 갖추는 일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