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6주년 특집⑤] 질병과 전쟁은 끝나도 후유증은 남는다

구제역으로 돈육 수출 명맥 끊기고 허가제 등 규제 일변도 전환 계기 전염병 발생 때마다 농가만 책임 가중 中 ASF가 세계 양돈업 생산‧교역 재편 종잡을 수 없는 질병, 글로벌 불확실성↑ 고질적 소모성 질병, 시장 안정성 위협

2026-05-07     임정은

돼지 질병은 그 자체로 막대한 경제적 손실을 가져오지만 그 충격과 후유증은 경제적 손실 그 이상이다. 우리 양돈산업의 지난 역사에서 결정적 전환점을 가져왔던 악성 가축 전염병들이 그랬다. 만성적인 양돈장 내 소모성 질병은 과거 그리고 현재까지 양돈산업의 안정적 발전을 저해하는 최대 위험 요소다.

■수출국 좌절시킨 구제역=1934년을 마지막으로 국내선 자취를 감췄던 구제역이 66년만인 2000년 경기도 파주에서 발생했다. 이후 02년 다시 한번 구제역이 발생하며 당시 16만여마리의 돼지가 살처분됐다. 그런데 돼지 살처분보다 더 결정적 피해는 따로 있었다.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어려운 일이지만 당시 우리나라는 돼지고기 수출국이었다. 98년 돼지고기 수출이 8만8천톤에 달했는데 수입은 5만6천톤으로 분명 수출이 수입보다 많았다. 이웃 일본을 중심으로 돼지고기 수출을 늘리며 당시에는 돼지고기 생산량 증가에도 동시에 돼짓값이 상승하는 일이 가능했다. 그런데 2000년 구제역 이후 수출은 바로 중단됐다. 그해 8월, 그리고 02년 11월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회복했지만 수출 시장을 찾지 못했고 이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그 이후 우리나라는 수출국으로의 발돋움이 번번히 좌절됐다. 역시 구제역 때문이었다. 지난 2014년, 구제역 청정국 지위를 얻기 위해 3년여의 노력 끝에 결국 청정국 지위를 얻었는데 단 2개월만인 그해 7월 구제역이 재발했다. 그리고 23년 5월, 구제역 청정국 지위 획득을 앞둔 시점, 다시 구제역이 찾아왔다. 당시에는 이번 청정국 지위 획득을 계기로 수출을 늘려보겠다는 야심찬 계획도 세웠지만 역시 수포로 돌아갔다. 그리고 지금 수출국은커녕 우리나라는 세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순수입국이 됐다. 지난 2000년 당시 구제역이 발생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수출국으로 계속 입지를 다져나갔다면 아마 우리 한돈산업은 지금과는 많이 다른 길을 걷고 있었을지 모른다.

■규제의 시작=2000년대 초반 구제역이 돼지고기 수출국 진입을 좌절시켰다면 2010~11년 구제역은 양돈산업에 대한 정부의 규제가 본격화된 계기가 됐다. 2010년 1월에 재발한 구제역은 4월과 11월 연달아 발생이 이어졌는데 이후 11년까지 계속됐다. 당시 자료를 보면 구제역은 약 170여일 계속됐고 이로 인한 살처분 두수는 332만마리로 당시 돼지 사육두수 가운데 1/3이 한순간에 땅에 파묻혔다. 직접적 피해액만 3조2천억원에 달했다.

그런데 이보다 더 뼈아픈 결과는 농가에 각종 규제와 책임이 강화되는 길로 들어섰다는 것이다. 정부는 구제역이 정리되기 시작하던 2011년 5월 ‘가축 질병 방역 체계 개선 및 축산업 선진화 방안’을 발표했다. 물론 막대한 피해를 낳은 구제역이 계기가 됐다. 구제역 SOP가 개정되고 축산관계자 책임 분담 원칙이 확립되면서 농가에는 백신비용 분담이, 지자체에는 매몰보상금 분담이 부여됐으며 보상금 감액 기준도 마련됐다. 그리고 무엇보다 양돈농가에 대한 모든 규제를 포괄하는 허가제가 도입된 것도 이때였다.

구제역으로 막대한 예산이 투입되고 악성 가축 전염병을 유발한 양돈산업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도 농가들에게는 불리하게 작용했다. 그 이후로도 정부는 구제역 등 가축 전염병 발생 때마다 농가에 더 많은 책임을 부여하는 방향으로 제도 개선을 이뤄나갔다.

■양돈 안정적 발전 최대 위협=돼지 질병은 당연히 돼지고기 수급 불안 요인으로 작용해왔다. 가장 단적인 사례가 2010~11년 구제역이다. 한해 1천300만~1천400만마리 출하되던 돼지는 구제역으로 돼지가 1/3 가량 묻히면서 2011년 1천84만마리로 급감했다. 문제는 이로 인해 돼짓값이 올랐는데 그냥 오른 정도가 아니었다. 2010년 평균 3천891원(탕박)이던 돼지고기 도매시세는 2011년 5천808원으로 단번에 50%가 급등했다. 그리고 정부는 이를 명분으로 처음으로 돼지고기 할당관세를 실시했으며 돼지고기 수입량은 2010년 18만톤서 11년 37만톤으로 2배 넘게 급증했다.

전무후무한 역대 최악의 불황도 구제역과 연관이 있다. 돼짓값이 급등하자 농가들은 입식을 크게 늘렸고 그 결과 2013년 돼지 출하는 1천613만마리로 2012년 대비 15%, 11년과 견주면 50% 가까이 증가했다. 시장에 가해진 충격은 컸다. 13년 돼짓값은 3천500원으로 12년 대비 10% 이상 급락했다. 그해 양돈 경영은 비육돈 두당 2만8천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양돈장 내 소모성 질병은 일상적으로 양돈장 생산 성적을 떨어뜨리고 결국 수급의 문제로까지 부상한다. 최근 한돈 산업이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지난해 돼지 출하두수는 10년만에 신기록 행진을 멈추며 감소세로 돌아서 올해까지 이어지고 있다. 현장에서 PED와 고병원성 PRRS로 인한 피해가 심상치 않다는 경고가 커지고 있다. 출하가 줄면서 당장 돼짓값은 오를지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볼 때 반길수 만은 없다. 소모성 질병은 그 자체로 한돈 가격을 높여 수입육에 유리한 판을 깔아준다. 이에 더해 한돈의 수급이나 가격 불안정을 야기할 수 있는데 이는 수입 돼지고기가 파고들 틈을 넓히는 역할도 한다. 올해 돼지고기 수입은 고환율에도 불구하고 사상 최고치를 향해 달리는 중이다.

■세계 교역도 좌지우지=지난 2018년 중국에서 발생한 ASF는 중국을 넘어 세계 돼지고기 시장에 커다란 충격파를 안겼다. 4억4천여마리에 이르던 중국의 돼지 사육두수는 ASF로 3억1천만마리대까지 급감하면서 중국은 2020년 돼지고기 수입을 520만톤 수준까지 늘린다. ASF 발생 직전 2018년 150만톤 대비 3배가 넘는 물량이었다. 세계 돼지고기 시장, 특히 수출국들은 일시적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중국이 점차 ASF에서 회복, 사육두수를 늘려가자 그 타격은 고스란히 세계 양돈업계로 퍼져나갔다. 유럽은 호황에서 불황으로 곤두박질쳤으며 한국과 같은 수입국들은 중국이 소화하지 못하는 물량을 받아내는 대체시장의 역할을 맡게 됐다. 지난해 중국의 돼지고기 수입량은 2020년 대비 78% 줄었고 세계 전체 교역도 이 기간 20% 감소했다. 세계 최대 돼지고기 생산국이자 수입국인 중국의 ASF는 그렇게 세계 돼지고기 시장을 요동치게 하면서 역사상 가장 높은 변동성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지난해 유럽 내에서도 돼지고기 최대 수출국인 스페인에서 ASF가 발생하며 유럽 전체 양돈산업은 다시 불황 속으로 빠져들고 있다. 이로 인해 유럽 양돈산업은 구조조정을 맞게 될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이는 세계 돼지고기 시장을 재편하는 동인으로 작용할 가능성도 있다. 악성 가축 전염병의 발생 여부는 수출국들의 경쟁력과 직결된다. 최근 몇 년 세계 돼지고기 시장에서 급격히 부상하고 있는 브라질의 경우 낮은 생산비 외에 구제역과 ASF 등 각종 전염병으로부터 자유롭다는 점이 시장 확대에 주요 강점으로 작용했다.

최근에는 SAT-1 구제역이 유럽과 아시아까지 확산하며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양돈 등 축산업계가 긴장하고 있다. 미국은 멕시코에서 북상하는 신세계나사벌레파리(NWS)가 턱 밑까지 올라와 경계 태세를 강화하고 있다.

ASF를 비롯한 돼지 질병은 여전히 그리고 앞으로도 세계 돼지고기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질병의 추가 확산과 새로운 지역으로의 유입, 여기에 더해 최근 신종 질병의 등장과 확산까지 동물 질병의 위험이 점차 가중되고 있다. 최근 OECD-FAO는 세계 농업 전망 2025-2034를 발표하며 미래 육류 산업이 다양한 불확실성에 직면해 있다고 지적했다. 그리고 그 중에서도 특히 가축 질병의 확산은 가장 큰 위험 요인이라고 강조했다. 환경 정책 변화, 무역 여건 변화 및 거시경제 불확실성 확대, 식단‧건강‧동물복지 등에 대한 소비자 인식변화 등 한국을 비롯한 세계 양돈업계는 새로운 시대적 과제와 변화에 직면해 있다. 그러나 오래된 과제인 질병은 여전히, 아니 오히려 과거보다 더 높은 영향력으로 산업의 운명을 쥐고 흔들며 세계 돼지고기 시장의 불확실성을 높이는 변수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