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강 생존력의 ASFV…방역 정책 전면 재점검을”
동남아 ASF 사례와 국내 비교 분석 동남아 양돈업 ASF 이전‧이후 나뉘어 소규모 농가 이탈에 양돈 기업화 진전 ASF 공기 전파 낮다는 인식 강한 우려 끈질긴 생존력 상상초월 저항성 주목을 현장 중심 과학적인 방역 체계 구축해야
“ASF는 공기 전파 여부가 핵심이 아닙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생존력과 저항력을 가진 바이러스입니다. 지금 이 위기를 넘기지 못한다면 동남아 국가들처럼 ‘산업 구조 재편’을 각오해야 하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태국 콘캔대학교 정식 교수로 재직 중인 정현규 도드람양돈농협 고문은 최근 귀국해 열린 양돈연구회 ‘동남아 ASF 현황 및 국내 ASF 대응 간담회’에서 이같이 경고했다. 정 교수는 간담회 도중 전남 영광 양돈장에서 아프리카돼지열병(ASF)이 발생했다는 소식을 접한 뒤, 향후 멀리 떨어진 지역에서 2~3건의 추가 발생이 이어질 경우 한돈산업이 단기간에 감당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정 교수는 “그동안 간헐적으로 발생했던 ASF 사례와 동일 선상에서 지금 상황을 단순하게 인식해서는 안 된다”며 “ASF는 이미 동남아에서 양돈산업의 역사를 전과 후로 갈라놓은 사건으로, 한국 역시 대응이 미흡할 경우 같은 전철을 밟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그는 국내에 퍼져 있는 ‘ASF는 공기 전파가 되지 않으니 과도하게 두려워할 필요는 없다’는 인식에 대해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ASF 바이러스는 냉동 상태에서도 1000일 이상을 생존할 수 있으며, 노출된 곳에서도 1년을 살 수 있고 최소한 섭씨 80도 온도로 30분 정도를 가열해야 죽지만 그러지 않은 상태에서는 생존력이 강하다.
이에 정 교수는 “동남아에서 경험한 ASF의 본질은 공기 전파 여부가 아니다”라며 “사료, 차량, 사람, 물품 등 공기 이외의 수많은 전파 경로와, 상상을 초월하는 바이러스의 생존력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실제 피해는 단순한 방역 실패가 아니라 관리 체계 전반의 붕괴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그는 최근 국내 발생 사례들의 공통점도 짚었다. 충남 당진은 농장 내 바이러스 유입 후 수개월이 지난 뒤에야 발견된 사례였고, 강원 강릉은 겨울철 2만 두 규모 대형 농장에서 발생해 방역 난이도가 극도로 높았다. 경기 안성과 포천 역시 양돈 밀집 지역이라는 점에서 추가 확산 위험을 안고 있다.
정 교수는 특히 기존 발생지역과 거리가 먼 전남 영광 사례를 언급하며 “인접 지역이 아닌 곳에서 추가 발생이 이어질 경우 한돈산업은 단기간에 감당하기 어려운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ASF는 개별 농가의 노력만으로 막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상황이 악화되면 ‘한돈산업 구조 재편’이라는 말이 현실이 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 교수가 말하는 산업 구조 재편은 동남아 여러 국가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난 변화다. 철저한 방역이 어려운 중소 농가는 급격히 이탈하고, 고강도 방역 시스템을 갖춘 기업 양돈 중심으로 산업이 재편되는 구조다. 중소 농가의 경우 방역 체계 붕괴로 사육 자체가 어려워지고, 결국 규모화·계열화 농장만 생존하는 방향으로 산업이 재편된다는 것이다.
정 교수는 태국의 사례를 들며 “해외 입국자의 양돈장 방문을 최소 1주일간 제한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대기업의 경우 해외 출장을 다녀온 직원에게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한다”고 설명했다. 그는 “본인 역시 지난해 일본 가고시마 연수 당시 현장 방문을 하지 않았음에도, 방역 문제로 1주일간 별도의 체류 기간을 거쳐야 했다”고 덧붙였다.
정 교수는 지금이야말로 정부와 생산자단체, 농가가 동일한 위기의식을 공유해야 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가까운 시기에 다른 지역에서 2~3건의 ASF가 추가로 발생한다면 상황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며 “앞으로 최소 3~4개월이 한돈산업의 향방을 가를 분기점”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한돈협회 등 생산자단체 차원의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전 농가 대상의 현실 설명과 협조 요청,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방역·경영 시나리오 마련이 시급하다고 제언했다.
정 교수는 “ASF는 이미 동남아 여러 나라에서 산업의 판을 바꿨다. 아직 늦지 않았다고 믿고 싶다”며 “지금 필요한 것은 보여주기식 대응이 아니라 현장을 중심에 둔 과학적이고 일관된 방역 체계”라고 강조했다. 이어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지 않으면 변화는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