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21주년 특집①] 무엇이 시대적 가치인지 고민해야
[창간 21주년 특집①] 무엇이 시대적 가치인지 고민해야
빈부차‧환경 등 자본주의 폐해 경고음 잇달아
일반 기업 매출‧이익 대신 사회적 가치 추구
시대적 요구에 부응하며 생존 길 적극 모색 중

한계 부딪힌 양돈 양적 성장 전환점 맞아
생산성‧농가 수익만으로 경쟁력 담보 못해
ESG 통해 양돈산업 지속 가능 길 찾아야
  • by 임정은

최근 기업 경영에 있어 최대 화두는 단연 ‘ESG’다. ESG란 환경(Environment)‧사회(Social)‧지배구조(Governance)의 영어 약자로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사회적 영향을 측정하는 데 있어 세 가지 핵심 요소를 말한다. 그동안 기업은 매출과 이익으로 평가받아왔다. 즉 기업의 재무성과는 곧 그 기업의 성과와 동일시돼왔다. 그러나 최근 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비재무적 가치가 그 기업에 대한 평가뿐만 아니라 생존과 지속 가능성까지 결정짓는 힘을 가지게 됐다. 그럼 그 힘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일까? 왜 기업들이 앞 다퉈 ESG 경영을 내세우고 있는 것일까? 그동안 자본주의 경제는 그 발전과정을 통해 생태적 과부하, 빈부 격차, 불공정 고용 등을 심화시켰고 이제 더 이상 이 같은 문제들을 내버려둬서는 이 세계도, 기업도 지속할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생겨나게 됐다. ESG가 지향하는 가치들은 바로 이 시대에 기업들이 지속 가능성을 위해 필요한 새로운 생존전략이 된 셈이다. 그런데 ESG 경영으로의 전환 배경과 지향점들을 보면 한돈산업이 지나온 길과 당면한 과제가 보인다. 그리고 ESG가 지금 우리 사회가 요구하고 필요로 하는 가치를 반영하는 만큼 ESG 속에서 한돈산업이 나아가야 할 방향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한계 부딪힌 양적 성장=한돈산업의 과거, 그리고 현재에 이르는 과정을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규모화와 양적성장을 빼 놓고는 얘기할 수 없다. 한돈산업이 규모면에서 정점에 달했던 지난 19년을 기준으로 국내 돼지 사육두수는 2000년 821만마리서 19년 1천128만마리로 20년간 37% 늘고 같은 기간 돈육 생산량도 71만4천톤에서 97만여톤으로 36% 증가했다. 세계 생산량(8천500만톤→1억200만톤, 20.3% ↑) 증가 속도와 비교해도 월등히 빠르다.

그 어느 먹거리보다 빠른 속도로 증가하는 국내 돼지고기 소비량(16.5→26.8㎏, 62.4%↑)이 뒷받침된 결과였다. 그리고 돼지고기는 줄곧 국내 육류 소비량 가운데 절반 가량(19년 기준 49%)을 차지하며 소비량 1위 자리를 지키고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유별나게 육류 소비서 돼지고기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 그만큼 돼지고기가 우리 국민 육류 소비 더 나아가 식생활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다는 얘기다. 그리고 이를 거름삼아 국내 양돈산업은 지난 20년간 3배(2000년 2조3천720억원→19년 6조3천924억원) 규모로 급성장할 수 있었다.

이 같은 양적 성장과 쌍을 이루는 변화의 특성은 규모화다. 1천두 미만 농가수가 2천년 2만1천호에서 17년 1천585호로 무려 93%가 감소하는 사이 1천~5천두 규모는 2천211호에서 2천383호로, 5천~1만두는 94호에서 325호로, 1만두 이상은 35호에서 113호로 늘었다. 지난 90년 0.3%, 2000년 9.8%에 불과했던 전업 규모(1천두 이상) 농가의 비중이 17년 64%로 급등했다. 양돈 등 축산업은 어떤 산업보다 규모의 경제효과가 뚜렷하다. 즉 규모화는 곧 양돈농가의 경쟁력과 생존의 조건과도 직결되는 문제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양돈산업의 발전과정은 곧 규모화 된 농가들을 중심으로 한 재편과정이었으며 양적 성장과 규모화가 지금까지 국내 양돈산업의 주된 생존 방식이자 경쟁력 획득 방안이었던 셈이다.

양돈산업의 규모화, 양적성장은 곧 생산방식에 있어서 집약적 사육 방식이 주류를 형성하게 되는 과정이었다. 특히 좁은 국토에 어느 나라보다 빠르게 증가하는 돼지고기 소비를 충족시키기 위해, 그리고 무엇보다 값싼 수입 돼지고기와 경쟁하기 위해 집약적 사육 방식이 선택이 아닌 필수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국내 양돈산업에 주어진 조건에서 생존을 위해 선택한 최선의 생존전략이 이제 양돈산업의 최대 위기 요인이 되고 있다. 환경오염 산업이라는 낙인이 그 중 하나다. 양돈은 필연적으로 분뇨를 배출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한정된 토지에 많은 돼지들을 사육하다보니 환경 부하를 유발할 수준의 분뇨가 생산되며 현재 양돈산업에 최대 위기 요인 중 하나로 떠오르게 됐다는 점이다. 냄새 민원부터 돼지 사육 제한까지, 양돈농가 더 나아가 양돈산업의 설 자리를 위협하는 최대 난제가 바로 환경에 관련된 문제다.

가축 전염병은 양돈산업에 대한 소비자들의 부정적 인식을 강화시키는 또 다른 위기 요인이 되고 있다. 매년 반복되는 가축 전염병과 그에 따른 살처분 뉴스는 양돈 등 축산업에 공장식 사육 방식이라는 이미지를 덧씌우며 비인도적 산업이라는 인식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런데 이 같은 부정적 인식은 최근 거세지는 친환경 소비 흐름과 만나 양돈업에 또 다른 차원의 위기를 만들어 내고 있다. 바로 채식과 대체육 얘기다. 환경 이슈는 점차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런데 양돈 등 축산업이 온실가스 배출 산업으로 전지구적 온난화의 주범으로 지목되면서 소비자들이 환경을 위해 육류 소비를 줄이는 것을 미덕으로 여기는 소비 기조가 빠르게 퍼지고 있는 것이다. 특히 지난해 코로나 19 사태는 환경과 건강, 동물복지 등에 대해 소비자들이 경각심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그리고 이는 실제 기존 밀집‧집약적 사육 방식을 통해 생산된 고기 대신 대체육을 선택하는 행동으로 이어졌으며 이 같은 움직임은 현재진행형이다. 국내 양돈업에도 변화하는 소비자 및 사회적 인식을 충족시킬 수 있는 산업으로 변화를 꾀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기업의 ESG 전환이 주는 시사점=양돈업은 여전히 중요한 식량산업이자 농촌경제의 대들보이며 일자리 창출과 전후방 산업 생산 유발 등으로 국가 경제에 있어서도 그 기여도를 무시할 수 없는 산업임에는 분명하다. 그렇기 때문에 더욱 양돈산업에 대한 사회적인 관심과 기대가 클 수밖에 없다.

분명한 것은 기업들에 있어서 ESG가 선택의 문제를 넘어 생존을 위한 필수 경영 전략이 된 것처럼 양돈업에 있어서도 지금까지의 생존전략에 대전환이 필요한 시점이 됐다는 것이다. 기업의 ESG는 주주와 소비자들이 ESG를 기준으로 상품을 구매하고 투자를 결정한다는 측면에서 단순히 착한일, 올바른 일을 한다는 가치 지향적 측면만 있는 것은 아니다.

양돈도 마찬가지다. 양돈업에 대한 사회적 요구의 변화에 발맞추지 않고서는 지속적인 소비를 담보할 수 없다. 양돈업 지속 가능성의 제1의 조건은 소비다. 양돈업의 지속 가능성을 지금까지 최우선 가치로 여겨졌던 생산성과 농가 수익에서만 찾을 수 없는 시대가 된 것이다. 기업들이 지금까지의 이윤추구에 반하는 ESG 경영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을 눈여겨봐야 하는 주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왜 ESG인가도 생각해봐야 할 지점이다. 양돈업이 새로운 생존전략으로 전환하는데 있어 무엇이 시대적 가치인지를 먼저 고민해봐야 하기 때문이다. ESG가 바로 지금 사회적 요구를 관통하고 집약하고 있는 가치라고 할 때 그 가치를 어떻게 양돈업에 실현시켜 지속 가능한 양돈업으로 발전시켜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 숙고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더 나아가 ESG를 단순히 끌어들이는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양돈업에서 현재의 경쟁력 개념을 대체할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경쟁력이라는 측면에서 무엇이 필요한지 구체적인 규범과 지향점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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