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자님은 대단한 노력파였다
[칼럼] 공자님은 대단한 노력파였다
‘안 되는 일 되도록’ 정열 쏟아
양돈 난제 해결에 지속 노력을
  • by 김오환

필자는 논어를 5번 이상 읽은 것 같다. 맨 처음엔 정독(精讀)했지만 서너번은 빠르게 읽어갔다. 눈으로 읽었지만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정은 달랐다. 논어에는 주옥같은 사자성어가 많다. 과유불급이니 교언영색, 무신불립, 화이부동, 살신성인, 임중도원, 전전긍긍, 후생가외 등 부지기수다. 이중에는 공자님께서 말씀하신 것도 있지만 예전부터 내려오던 성어도 적지 않다.

논어 가운데 좋은 글귀도 수없이 많지만 필자가 잊지 못할 구절이 있다. 헌문(憲問)편 막판에 있는 구절이다. 옮겨 적으면 이런 내용이다. “자로가 석문 밖에서 잤다. 다음날 아침 성문 안으로 들어갈 때 문지기가 물었다. 어디서 오시오? 자로가 말했다. 공씨(孔氏)댁이요. 문지기가 말했다. 바로 안 되는 줄 알면서도 굳이 하려는 그 사람 말인가요?” 그런 다음 다른 문장으로 넘어가 문맥을 이해할 수 없지만 ‘공씨’란 공자님을 지칭한 것 같다.

그런 것 같다. 공자님은 안 되는 일을 되려고 하다 생을 마쳤다. 주(周)나라 말기 춘추시대 중국은 혼란기였다. 서로 패권을 차지하려고 전쟁이 끊이질 않았다. 그런 상황에서 공자님은 여러 제후국을 다니면서 ‘극기복례(克己復禮)’를 당부했다. 말 그대로 자기 자신을 극복하고 예(禮)로 돌아가자고. 바로 예란, 주나라의 예법으로 돌아가자는 뜻(한학자 기세춘 선생 해석)인데 어느 제후국이 천하를 눈앞에 두고 주나라 왕실 휘하로 돌아가겠는가.

공자님의 주장은 대의명분이 있었을지라도 제후국을 설득력 하는데 부족했을 것이다. 그래서 공자님은 크게 등용되지 못하고(노나라 장관 역임) 극기복례의 이상을 접어야 했다. 그런 공자님과 문하생들을 지켜보던 문지기가 공자님에 대해 그렇게(안 되는 줄 알면서 굳이 하려는 사람)평(評)하지 않았나 생각한다.

공자님의 애민(愛民) 평화(平和)정신에 비길 수야 없지만 ‘안 되는’일을 ‘되도록 꾸준히 노력’하고 설득하는 충정만은 소인(小人)인 필자도 배우려고 노력한다. 모든 필부(匹夫)들에게 안 되는 일이 한두 가지는 있다. 포기하는 사람도 있고 계속 도전하는 사람도 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도전하는 사람이 더 많아 보인다. 어떻게 해서든 개선해 더 나은 삶, 사회를 만들려는 인간의 기본적인 욕심이 많아서 그럴 것이다.

양돈으로 돌아오자. 독자나 필자에 있어 양돈은 직업이다. 어떻게 하면 잘될 수 있을지 고민하고 방안을 찾아내려 한다. 꼭 필요한데 잘 안 되는 것을 되도록 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어렵고 힘들다는 점이다. 꾸준한 노력과 인내가 동반돼도 겨우 이룰 사안이 대부분이다. MSY 등 생산성 향상, 분뇨 등 냄새 저감, 뒷다리 등 비선호 부위 소비 제고 등이 그렇다. 양돈뿐이겠는가. 세상사 모두, 안 되는 것을 되게끔 노력하다 마치는 게 인생 아닌가. 봄을 맞이하는 입춘(立春)도 지났고 음력 설날도 쇘다. 새해가 시작됐다. 신발 끈 다시 조여 매 올해 각자가 꼭 하고 싶은 일 이루기를 응원한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