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오환 칼럼]꼰대들을 위한 대변
[김오환 칼럼]꼰대들을 위한 대변
아랫사람 ‘시행착오’ 최소화 유도
달리는 말 더 잘 달리게 채찍가해
  • by 김오환

추석 연후 때 3~4년전에 결혼한 조카를 만났다. 몇 마디 하다가 언제 얘 가질 거냐?”라는 질문에 옆에 있던 집사람이 말을 막았다. “꼰대같이 그런 거 물어본다고 핀잔을 줬다. 필자가 아내를 쳐다본 순간, 조카는 수초간 머뭇거리다 저쪽 자리로 갔다. 때가 때인 만큼 마음을 가라앉히고 곰곰이 꼰대에 대해 생각해봤다. 연휴 후 출근, 국어사전에서 꼰대를 찾아봤으나 나와 있지 않았다. 인터넷을 통해 검색해보니 권위적 사고를 가진 어른이나 선생님을 비하하는 학생들의 은어라고 풀이하고 있다.

아랫사람이나 젊은 세대와 이야기를 한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서로 살아온 방식, 사고력 등 가치관이 달라서다. 이 시대만이 아니다. 과거에도 그랬다. 필자도 10대 후반에서 30대 초반까지 꼰대를 싫어했다. 그 때의 꼰대들은 가장 많은 체험(보릿고개)을 내세우며 그들의 논리를 합리화하고 강권하다시피 했다. 이해할 수 있었지만 이를 수용, 내 것으로 하기는 어려웠다. 그럼에도 그들은 필자에게 꼰대소리를 들으면서까지 훈계잔소리를 했을까?

()이 든 지금 되돌아보니, 꼰대들의 지적과 인생에 대한 방향제시100%는 맞다. 청년으로 돌아갈 순 없지만, 돌아갈 수 있다면 꼰대들의 혜안에 적극 따르고 실행하고 싶다. 그런 미련 때문인지 아직도 필자는 꼰대 노릇을 멈추지 않고 있다. 주변 후배나 아랫사람들을 보면 꼰대인 필자의 말귀를 알아들은 그들이 쪼금은 나은 것 같다.

꼰대들의 잔소리는 공허한 메아리가 아니다. 나이어린 사람들의 시행착오(試行錯誤)를 최대한 줄일 수 있도록 몸소 체험한 산지식인 것이다. 잔소리를 통해 그들이 시행착오만 줄인다면 개개인의 사회적 경제적 비용은 크게 절감될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양돈을 들어다 봤다. 양돈장에는 양돈 2세들이 적지 않다. 2세들은 20대 초반이 아니고 20대 후반에서 40대 초반까지 다양하다. 결혼하지 않은 사람보다 결혼한 2세들이 많다. 성인이며 가정의 가장이다. 스스로 사회(사료나 약품 등 양돈업계)를 알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다. 농장 경험도 만만치 않아 현장에 대해 박사급 수준이다. 성적 역시 앞서가고 있다. 어떨 때는 사장님 대우도 받는다. 2세가 보기엔 거칠 게 없어 보인다.

그런데 1세가 보기엔 그게 아니다. 대견하면서도 어딘가 부족하게 느껴지는 입장이다. 과거에 비하면 사양관리에 쏟는 노력이 수월하게 보인다. 어떻게 하면 좋아질 것이란 예감이 다가온다. 1세는 가만히 있지 못한다. 달리는 말 더 잘 달리라고 채찍을 가한다. 그 채찍을 들었다는 자체가 꼰대인 것이다. 앞서 말했듯이 꼰대는 자식이나 후배 등 아랫사람의 시행착오를 최대한 줄이도록 악역을 담당한 배우라고 받아들인다면 만사 해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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