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악법은 법이 아니다
[칼럼] 악법은 법이 아니다
기본권 침해 등 강한 반발만 초래
믿음과 신뢰 속에서 법 추진 돼야
  • by 김오환

천자문을 읽고 쓰면 재밌다. 사자일구(四字一句)로 서로 대칭 또는 이어지면서 하나의 문장을 이루고 있는데 많은 가르침을 일깨워준다. 우주의 무한함을 비롯하여 사계절 등 자연의 이치, 몸에 필요한 음식, 살아가는 예절과 지혜, 남녀의 자세, 역사 등 다양한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그 중에서 법(法)과 관련된 구절이 있어 소개한다.

하준약법(何遵約法)하고 한폐번형(韓弊煩刑)이라. 풀이하면 소하(蕭何)는 요약한 법을 따라 다스렸고 한비(韓非)는 번거로운 형벌로 피폐하였다. 한(韓)나라 소하는 요약한 법으로 한나라 400년을 이끌고 간 반면, 진(秦)나라 한비자는 참혹하고 각박한 법 시행으로 진나라가 2대도 마치지 못하고 망한 것을 표현한 구절이다.

최근 양돈과 관련된 입법 및 개정(안)을 보면 천자문에 나오는 구절을 떠오르게 한다. 이번 ASF(아프리카돼지열병) 발병은 농가의 방역 과실보다는 부처간 정책 혼선과 의사소통 부족의 영향이 크다. 그동안 야생멧돼지 개체수 조절을 수차례 요구했음에도 묵묵부답인 정부에서 ASF 후 양돈업에 대한 잇단 징벌적 규제(추진중)는 과(過)한 느낌이다. 예를 들면 소독설비 및 방역 시설이 미비한 경우 3회 위반 시 허가를 취소한다거나 질병이 발생했을 때 도태 ‘권고’에서 도태 ‘명령’ 등의 추진이다.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 했지만 필자는 ‘아니’라 판단한다.

이렇게 강화된 법은 양돈 사육기반을 위축, 일자리를 줄이고 식량안보를 위협할 뿐만 아니라 농가들의 행복추구권, 직업선택권 등 국민의 최저 기본권을 축소시키는 것이다. 또한 사유재산을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될 수 있다.

사실 농장 방역은 농가의 주도적 책임과 정부의 지원 하에 이뤄져야 한다. 농가의 입장은 정부에게 모든 것을 다해줄 것을 요구하는 게 아니다. 농가들이 할 수 없는 것을 정부에게 요청하는 것이다. 최근 일반적인 양돈장은 멧돼지와 조류가 농장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약제를 농장 주변에 살포, 돼지와의 접촉 금지 등 방역에 대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하지만 농가들이 산에 가서 멧돼지를 잡을 수 없기 때문에 멧돼지 포획과 그에 따른 포상금 인상 등을 건의하고 있다. 또한 오죽했으면 포상금 모금 운동을 전개하고 있지 않은가.

분위기에서 질병 발생과 관련된 책임을 농가에게 전가시키는 것은 정부의 역할이라 할 수 없다. 책임 회피를 위한 전략이며 관계 당국자들의 보신(保身)적 태도라는 비난도 면키 어려울 것이다. 필자가 법학자가 아니지만 법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점은, 믿음과 신뢰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천자문에 나와 있듯이 규제나 처분, 구속 중심의 법안은 백성들의 반발만 불러일으킨다는 평범한 진리를 다시 한번 음미했으면 한다. <김오환 양돈타임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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