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특집] 한돈, ‘소비 실종’으로 ‘총체적 난국’…다각적 대응 절실
[기획특집] 한돈, ‘소비 실종’으로 ‘총체적 난국’…다각적 대응 절실
4월보다 낮은 5월 돈가…‘이상’ 흐름
돈육 공급량 지난해보다 오히려 감소
재고량·쇠고기 수입 증가, 시장에 부담

1분기 소매 판매 증가율 1.7%로 ‘뚝’
회식 등 외식소비 ‘절벽’, 실업률도 급증
‘영국의 돈육소비 캠페인’참고 바람직
  • by 임정은

돼지 값이 좀처럼 힘을 받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당초 돼지 값 강세를 기대하게 했던 중국의 아프리카돼지열병(ASF) 상황은 변하지 않았다. 돼지 출하물량이 넉넉하지도 않다. 때문에 양돈업계는 더욱 당혹스럽다. 더구나 연일 이어지는 언론들의 금겹살 보도는 양돈농가들을 더욱 힘 빠지게 하고 있다. 지금의 양돈시장을 어떻게 봐야할지, 또 돼지 값을 살리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양돈업계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오르지 않는 돈가=돼지 값은 4월 초순 이미 4천원 후반대까지 치솟으며 2분기 돈가 급등 가능성을 점치게 했다. 그러나 중순을 넘기면서 돼지 값은 떨어지기 시작했다. 단기간 급등에 따른 조정국면이겠거니 했지만 아니었다. 돼지 값은 4월 평균 4천370원서 5월 10일 현재 4천100원대로 지난해 동월(4천635원)에 비해서는 물론 4월에 비해서도 오히려 낮다. 더욱이 매년 돼지 값이 본격적인 계절적 강세로 진입하는 5월 연휴 직전에도 돼지 값은 꿈쩍하지 않았다. 4월보다 5월 돈가가 낮았던 해는 찾아보기 힘들만큼 현 시장은 예외적이다.

더구나 올해는 돼지 값이 오를 것이라는 기대감이 어느 해보다 높았다. 중국발 ASF 여파로 우리나라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 돼지 값 강세가 점쳐졌기 때문이다. 또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 지난해 하반기부터 침체를 보이던 돼지 값이 지난 3월 심상치 않은 상승세를 보였고 4월 중순까지도 올해 돼지 값 강세 전망이 힘을 받았다. 그런데 시장은 예상과는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중국발 ASF가 외부적 변수 인만큼 제쳐두고라도 국내 돼지 값에 직접적인 변수가 되는 돼지고기 공급물량을 보면 의문은 더 커진다. 4월까지 돼지 출하물량은 지난해보다 1.2% 많은 595만5천마리를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10일 현재 5월 일평균 돼지 출하두수는 6만8천여마리로 일년전 같은 기간 6만9천마리에 비해 오히려 다소 줄었다. 더구나 돼지고기 수입량은 4월까지 16만4천톤으로 일년전 17만7천톤에 비해 7.3% 가량 적었다. 이에 4월까지 돼지 출하가 늘었다고 하더라도 한돈 생산량(35만8천톤, 축산물품질평가원)과 수입량을 합산한 올해 돼지고기 공급량은 52만2천여톤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 53만1천톤에 비해 약 1.6% 가량 적다. 돼지고기 공급량으로는 지금의 돼지 값을 설명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무엇이 돼지 값 약세의 원인이 되는 것일까?

■‘돈맥경화’의 요인들=올해 공급량은 줄었지만 재고량까지 감안하면 얘기는 또 달라진다. 지난해 한돈, 수입육 모두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면서 올해로 넘어온 재고가 만만치 않다. 18년 한돈은 약 94만여톤이 생산됐고 수입물량은 46만여톤에 달해 전년 대비 5%, 25.5% 각각 증가했다. 그리고 지난해 채 소비되지 않고 넘어온 재고량은 올해 1월 기준으로 한돈이 7만여톤, 수입육이 8만5천여톤에 달했다. 일년전에 비해 각각 70% 가량 증가한 물량이다. 문제는 이처럼 쌓인 재고물량은 육가공업체 작업물량 감소의 원인이 되고 이는 양돈시장 전반의 활력을 떨어뜨릴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또 하나 신경 쓰이는 것은 수입육이다. 물론 돼지고기 수입량은 줄었지만 한돈과 경쟁하는 다른 육류의 수입은 늘었기 때문이다. 수입 쇠고기가 대표적이다. 4월까지 쇠고기 수입량은 13만6천톤으로 일년전 12만1천톤에 비해 12% 가량 증가했다. 특히 미국산 쇠고기가 지난해부터 빠르게 늘고 있는데 올해 역시 미국산이 1위로 쇠고기 수입 증가를 주도하고 있다. 유통업계에서는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소비자들의 태도가 광우병 사태 당시와 비교하면 크게 달라졌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이에 대형 마트 등에서도 수입 쇠고기가 잘 팔리는 품목으로 자리잡으면서 한돈 매출에 직접적인 변수가 될 정도라는 지적이다.

또한 최근 전반적인 소비문화의 변화도 눈여겨봐야 한다. 식품 소비 시장에서 최근 두드러지는 변화는 1인 가구의 증가와 간편식 시장의 확대를 꼽을 수 있다. 지난 2011년 8천억 규모이던 간편식 시장 규모는 올해 4조원을 바라보고 있다. 문제는 돼지고기 소비에서도 가공식품의 비중이 확대되면서 한돈의 입지는 더 위협받고 있다는 점이다. 신선육에 비해 가공육은 소비자들이 원산지를 잘 따지지 않는다. 가격이 무엇보다 중요한 경쟁력이다. 때문에 지난 14년부터 이어진 고돈가로 많은 2차 육가공업체들이 수입육으로 돌아섰다. 결국 구이용 부위는 수입 쇠고기에, 가공용 부위는 수입 돼지고기에 치이는 신세가 된 것이다.

외식 소비 불황도 심각하다. 소비 침체 분위기 속에 52시간제가 외식 시장 침체를 더욱 부추겼다. 각종 모임도 줄고 무엇보다 직장의 회식이 줄었다. 삼겹살은 대표적인 회식, 모임 식사 메뉴다. 이는 통계로도 나타난다. 외식업체들의 월평균 돼지고기 구매량이 17년 149.7㎏에서 지난해 123.9㎏으로 17% 넘게 줄었다. 이런 가운데 외식 시장에서 한돈은 이베리코나 수입 쇠고기에 밀리고 있어 외식 시장에서의 한돈 입지는 더욱 위축되고 있다.

■결국 소비의 문제?=그런데 한돈 소비 문제가 그렇게 간단치는 않다. 수입육과의 경쟁 이전에 국내 경기 불황이 계속되면서 경제 전반에 걸쳐 소비 침체가 심화되고 있어서다. 올해 1분기 소매판매 증가율은 지난해 동기간 5.3%에서 1.7%로 크게 낮아졌다. 그 결과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1.5%서 올해 0%대(4월 0.7%)로 하락했다. 최근 현대경제연구소는 이 같은 상황을 준(準) 디플레이션으로 지칭했다. 그리고 수요 측면에서의 원인 중 하나로 가계 소비 여력 확대 부진을 지목했다. 노동시장의 부진으로 특히 소비 지출이 많은 30~50대가 다른 연령층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비 수요가 더욱 제약됐을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 연령대는 한돈 주요 소비층이기도 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달 실업률은 4.4%로 2000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가계 소비 여력이 전반적으로 약화된 현 상황이 돼지고기 소비, 특히 한돈 소비에 있어서 제약 요인이 됐을 가능성을 짐작케 하고 있다. 이 경우 한돈 소비를 늘리는 데 있어서 한돈 소비 홍보의 효과도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때문에 지금의 한돈 시장 침체는 한돈 소비 홍보와 함께 보다 장기적이고 다각적인 해법이 요구된다. 돼지고기 수출이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현재 한돈 가공품 수출이 이뤄지고 있는 홍콩의 경우 최근 ASF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올해가 시장 확대의 기회가 될 수 있다. 또 ASF가 심각한 베트남 등 동남아 시장도 지속적으로 한돈 진출의 기회를 노려볼만 하다.

아울러 한돈 농가의 경영 안정에도 지혜를 모아야 한다. 돼지 값 하락이 문제가 되는 것은 결국 농가의 경영 악화와 이로 인한 농가 이탈 및 생산 기반의 축소다. 돼지 값으로만 접근할게 아니라 장기적인 시각에서 제도적으로 농가의 경영 안정을 꾀할 방안을 마련해야 할 때다.

아울러 한돈 소비 홍보도 계속돼야 한다. 특히 지난해 이베리코 돼지고기 등 수입육들이 한돈의 고유 영역이던 맛과 차별화된 품질 등을 내세우면서 성공적으로 시장을 넓혔다. 그런데 이는 한돈이라는 브랜드 포지션이 모호해지는 결과를 가져왔고 한돈의 경쟁력은 어느 때보다 위기를 맞고 있다.

최근 AHDB(영국농업원예개발공사)의 돼지고기 소비 촉진 캠페인 결과가 발표돼 주목을 끌고 있다. 3년의 단계적인 소비 홍보 계획 하에 진행되고 있는 이 캠페인은 주중 식사에 돼지고기가 적합하다는 메시지와 함께 손쉬운 돼지고기 요리 방법을 지속적으로 노출시키고 있다. 이를 통해 보다 자주 소비자들이 돼지고기를 구매토록 유도한다는 취지다. 점차 닭고기 등 백색육에 빼앗기는 시장을 지키기 위한 노력이다. 그리고 시장 조사 회사인 Kantar 조사에 따르면 영국에서 진행된 돼지고기 소비 캠페인 결과 돼지고기 판매량이 지난 1년간 13.9% 증가했다. 특히 35~54세의 젊은 층에서 좋은 반응을 얻어 지속적인 돈육 소비 제고효과도 기대되고 있다. 이렇듯 그 시장특성에 맞춰 잘 계획된 소비홍보는 시장과 산업을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

우리 돼지 한돈의 경쟁력은 무엇인지부터 어떤 메시지로 어떻게 차별화해 나갈지, 그리고 이를 어떻게 소비로 연결시킬 수 있을지 고민과 노력이 절실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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